르비우, 인구·기업 유입 'EU 관문'…하르키우 "러스트벨트 될 우려"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4년째 이어지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르키우와 서부 도시 르비우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3일(현지시간) 한때 강한 산업 도시이자 우크라이나 제2 도시였던 하르키우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서부 르비우는 인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하는 등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지리적 조건이다. 하르키우는 러시아에서 40㎞ 거리지만 르비우는 폴란드에서 70㎞ 떨어진 유럽연합(EU) 시장의 관문이 됐다. 르비우 주민 상당수는 국경 넘어 폴란드에서 일한다.
르비우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도시였지만, 소련 시기 우크라이나의 중심은 동쪽으로 쏠렸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EU와 우크라이나의 통합 움직임이 가속하자 르비우는 다시 중부 유럽 도시라는 예전의 지위를 되찾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감소세였던 르비우 인구는 2022년 이후 증가세로 돌아서 100만명에 이르렀다. 하르키우를 포함한 동부에서 유입된 인구만 15만명이다.
280개 기업이 르비우주로 이전했는데, 그중 70개는 하르키우에서 옮겨 왔다. 최근에는 르비우 근교에 대형 산업단지와 대학교가 신설됐다.
EU의 폴란드-루마니아 간 철로 업그레이드 계획은 르비우를 철도 허브로 만드는 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드리 사도비 르비우 시장은 "러시아 침공 전보다 우리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전쟁 전 160만명이었던 하르키우 인구는 현재 120만∼130만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이 시작되고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러시아 점령지에서 하르키우로 넘어온 피란민이 많지만 기존 중산층이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서쪽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소련 초기 우크라이나의 수도였던 하르키우는 전쟁 전만 하더라도 대학생이 27만명인 교육 중심지였다. 그러나 드론과 미사일 공습이 일상이 된 지금 대부분 교육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학생 수는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르키우의 화물 중개업체 로지티의 직원 수는 전쟁 전 850명에서 185명으로 줄었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파울로 콥자르는 하르키우와 르비우 사이를 오가며 일한다. 그는 "하르키우 복구까진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며"내 친구 대다수도 르비우를 떠났다"고 말했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보기술(IT) 인력의 약 14%가 하르키우에 있었지만 지난해 4%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르비우는 14%에서 18%로 높아졌다.
건설 통계를 봐도 도시간 격차는 크다. 올해 상반기 키이우에서 신규 주택 1만5천559채, 르비우에서 6천956채 건축 공사가 시작됐으나 하르키우에선 199채에 불과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수도 키이우는 계속 자산과 인재를 유치할 수 있고, 주요 항구 도시인 오데사의 미래도 안전한 반면 우크라이나 동부 산업지대가 쇠락해 '러스트 벨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용 저울 생산업체 USC는 하르키우 공장이 파괴되자 생산을 중부 지역으로 이전했다. 이반 모우찬 USC 최고경영자(CEO)는 "복귀하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다른 업체들도 이렇다면 하르키우가 (미국의 러스트 벨트 도시) 디트로이트처럼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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