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서 도약과 성장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AI 투자에 방점을 찍은 728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3번의 박수로 화답했고, 국민의힘은 침묵시위와 불참으로 맞섰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총 22분 간의 연설 중 AI를 28번이나 외치며 AI 투자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이 대통령은 "정부는 2026년 총지출을 올해 대비 8.1% 증가한 728조 원으로 편성했다"며 "AI 시대, 미래 성장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전략적 투자인 만큼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전환해 왔던 것처럼 AI 사회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며 "산업화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달이 뒤처지고, 정보화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1년이 뒤처졌지만, AI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지난 정부는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도 모자라 R&D 예산까지 대폭 삭감하며 과거로 퇴행했다"며 "출발이 늦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부단히 속도를 높여 선발주자들을 따라잡아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의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의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 이제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서 도약과 성장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며 "정부가 마련한 2026년 예산안은 바로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총 10조 1000억원을 편성했다며 "올해 예산 3조 3000억원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난 규모"라고 말했다. 이 중 2조 6000억원은 산업과 생활, 공공 전 분야 AI 도입에 투입하고, 나머지 7조 5,000억원은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쓸 방침이다.
'자주국방'·'한반도 평화' 동시 강조
이 대통령은 내년도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8.2% 늘어난 66조 3000억 원으로 편성했다며 '자주국방'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북한 연간 GDP의 1.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사용하고, 전 세계 5위의 군사력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이 국방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의 문제"라며 "재래식 무기체계를 AI 시대에 걸맞는 최첨단 무기체계로 재편하고, 우리 군을 최정예 스마트 강군으로 신속하게 전환하여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우리의 염원인 자주국방을 확실하게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도 강조했다. 그는 "평화가 흔들리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국민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남북 간 신뢰 회복과 대화 협력 기반 조성을 위해 담대하고 대승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며 "휴전선 일대에서의 군사적 긴장 완화 노력을 지속하고, 교류협력(E), 관계정상화(N), 비핵화(D)를 통한 'END 이니셔티브'로 평화 공존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확실히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기준중위소득 인상 △근로감독권 2000명 증원 △아동수당 지급 연령 상향 △청년미래적금 신설 △지역사회 통합돌봄 확대 △대중교통 정액 패스 도입 △24조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 취약계층 보호와 산재사고 예방, 소상공인 지원 등을 위한 예산도 편성했다.
이 대통령은 '지방 우대 재정 원칙'을 도입해 국토균형발전에도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편성함에 있어 수도권 1극 체제로 굳어진 현재의 구도를 극복하고 지역이 성장의 중심이 되어 5극 3특의 새 시대를 열도록 지방 우대 재정 원칙을 전격 도입했다"며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지원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 초반 지난 한 주간의 치열했던 다자외교 성과를 언급했다. 특히 대미 관세협상 타결,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핵연료 공급 및 원자력 협정 개정 합의 등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상세히 소개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국력을 키우고 위상을 한층 높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극과 극'...민주당 33번 박수·국힘, 李 재차 면담 요청에도 불응
이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AI를 강조하며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그는 "내년은 'AI 시대'를 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백 년을 준비하는 역사적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저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그래서 자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금 모으기 운동으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우리 국민이 힘을 모은다면 못해낼 일이 뭐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록 여야 간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고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라며 "이번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에 통과되어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안타까운 현실'이란 표현은 초안에는 없었던 것으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날 내란특검의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하며 시정연설에 불참한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여야 반응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이 대통령의 입장과 퇴장 때 일렬로 도열해 악수로 환영했고, 연설 도중 33차례 박수를 보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로텐더홀 계단에서 '야당 탄압, 불법 특검'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시정연설 전 사전 환담에도 불참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연설 뒤 여야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다시 제안했지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응하지 않았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AI 분야처럼 민간 분야가 감당하기 어려운 초대형 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공공투자 섹터를 담당할 정부 투자 기관 관련 제도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 대변인이 전했다.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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