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을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산업 대전환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중견기업계와 마주 앉아 '협상가'에서 '변화의 항해사'로 변신을 알렸다. 한미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직후, 김 장관은 한국 제조업의 인공지능(AI) 전환, 즉 'AX(Artificial Intelligence Transformation)'를 차세대 국가 전략으로 제시했다.
서울 용산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주최 '제190회 중견기업 CEO 오찬 강연회'의 주제는 '새로운 대항해 시대'. 70여 명의 중견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자리한 현장에서는 협상 성공의 여운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논의가 오갔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 산업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됐다"며 "이제 남은 과제는 기술 대전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AI와 데이터가 새로운 항로를 결정짓는 시대"라며 "산업부가 추진 중인 AX 정책이 우리 기업의 생존력을 높이는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이 이날 제시한 비전의 핵심은 '맥스 얼라이언스(M.AX Alliance)'다. 산업부가 9월 출범시킨 민관 합동 위원회로, 국내 제조업의 AI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협력체다.
그는 "중국의 공장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무인화된 생산라인이 24시간 돌아간다"며 "이제 중국은 우리 뒤에 있는 추격자가 아니라 앞서 달리는 경쟁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희망은 있다. 한국 제조업은 여전히 양질의 데이터와 숙련된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맥스 얼라이언스의 전략적 방향을 'A.L.L'로 설명했다. Advance(고도화), Link(연결), Leverage(지렛대). 산업 현장을 데이터 기반으로 고도화하고, 기업 간 협력으로 연결성을 강화하며, 이를 투자 유치의 지렛대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Innovation), 속도(Acceleration), 생태계화(Network)라는 세 가지 과제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AI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닙니다. 일하는 방식과 경쟁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라며 "산업부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설계하고 있다"며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속도는 기업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의 발언은 이날 강연 내내 역사와 산업을 넘나들었다. 그는 "성리학이라는 틀에 갇혀 혁신을 막았던 조선의 한계를 떠올린다"며 "우리 기업이 과거의 방식에 안주한다면, 글로벌 대전환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견기업이 중견에 머물러선 안 된다. 기술 혁신으로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정부는 그 길에 필요한 디지털 인프라와 데이터를 개방하고, 기업은 도전으로 응답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장관의 이런 메시지는 단순한 격려를 넘어선 실질적 방향 제시로 해석된다. 중견련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AI 도입 필요성을 인식하는 중견기업은 59.1%에 달하지만 실제 도입률은 18.1%에 불과하다. 인력과 자금, 기술 지원의 한계 때문이다.
이에 산업부는 내년부터 중견·중소기업 중심의 'AX 시범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AI 분석 플랫폼을 통해 제조 공정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김 장관은 "대한민국은 이미 AI 산업의 허브가 될 조건을 갖춘 나라"라며 "엔비디아 젠슨 황 CEO도 '한국이 가장 유력한 AI 중심국이 될 것'이라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탓하기보다, 이미 가진 것을 연결하고 확장할 때다"라며 "정성을 다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결국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지난 10월 말까지 한미 관세 협상의 전면에 섰다. 트럼프 행정부의 '직접 개입형 통상 전략' 속에서도 한국 산업의 이해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대표는 정말 터프한 협상가"라며 공개석상에서 김 장관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제 그의 관심은 '협상 이후의 산업 미래'로 옮겨갔다. 경제계 관계자는 "김 장관은 협상장에서 보여준 인내와 추진력을 산업 전환 정책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며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인 제조업 경쟁력 회복에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중견련 관계자 역시 "정부가 추진하는 AX 정책은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라며 "김 장관의 비전이 현실화된다면, 중견기업이 산업 구조 혁신의 주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연의 끝에서 김 장관은 "지금은 새로운 항해의 시대"라고 말헀다.
"15세기 바스쿠 다가마가 신대륙을 향해 나아갔던 그 순간처럼, 지금의 인공지능 전환은 산업의 바다를 바꾸는 여정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함께 나아간다면, 대한민국 제조업은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설 것입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