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 해체 시장이 드디어 실질적인 첫 걸음을 내디뎠다. 두산에너빌리티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계약을 체결하고 고리원전 1호기 해체공사를 본격화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설비 철거 공사를 넘어, 한국이 원전의 '건설국'에서 '해체국'으로 산업지형을 확장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고리1호기는 1978년 가동을 시작해 2017년 영구정지된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이다. 이번에 착수하는 '비관리구역 해체'는 방사선 노출이 없는 구역을 대상으로 한 1단계 공사지만, 국내 원전 해체 프로세스가 실제 실행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두산에너빌리티가 HJ중공업, 한전KPS와 함께 컨소시엄 형태로 2028년까지 공사를 수행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방사선 관리구역(1차 계통) 해체로 이어질 '파일럿 케이스'가 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설계도면 해체 반영 기술 ▲폐기물 분류·처리 시스템 ▲작업자 안전관리 체계 등 실증 데이터가 축적되어, 향후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의 표준 모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 수주를 통해 원전 생애주기(Lifecycle)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건설·기자재 공급 중심이던 기존 사업 구조에서 해체·폐기물 관리 영역으로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원전 생태계 내에서 '엔드 투 엔드(End-to-End)' 사업 모델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세계 원전 시장이 '신규 건설'보다 '해체·관리' 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번 프로젝트는 해외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영구정지 원전은 588기로 늘어나며, 글로벌 해체 시장 규모는 수백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적으로도 고리1호기 해체는 '에너지 전환기'의 균형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탈원전에서 다시 원전 생태계 강화로 정책기조를 선회했지만, 노후 원전의 안정적 해체는 여전히 필수 과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공기업·민간기업 간의 역할 분담 모델이 마련되면, 향후 신한울 1·2호기 이후 세대의 해체 프로젝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고리1호기 해체는 단순히 한 발전소의 마무리가 아니라, 한국 원전 기술력의 새로운 실험장이자 산업 다각화의 출발점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그 첫 시험대에 올랐다.
원전 건설 기술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해체 분야로 확장하고, 해외 원전 해체 시장 진출까지 이어간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국산 원전 해체 산업의 0호 실증'으로 기록될 것이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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