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법원에서 약 1억9,000만 달러, 한화로 약 2,740억원에 달하는 배상 평결을 받았다. 미국 현지 배심원단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관련 기술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결과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불복 의사를 밝히며 "이미 미국 특허청에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 특허 무효를 다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평결은 미국 텍사스주 마셜에 위치한 연방법원에서 이뤄졌다. 마셜은 '특허 소송의 메카'로 불릴 만큼 관련 분쟁이 잦은 곳으로 유명하다. 소송을 제기한 곳은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픽티바 디스플레이스라는 회사다. 이곳의 모기업인 키 페이턴트 이노베이션스는 다국적 특허 관리 기업으로, 과거 독일 조명업체 오스람이 OLED 상용화를 준비하면서 취득한 수백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픽티바는 지난해 소송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 TV, 노트북,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제품이 자사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문제된 기술은 OLED 디스플레이의 밝기와 전력 효율을 높여주는 핵심 구조에 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해당 특허는 무효이고, 제품에 실제 적용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지만, 배심원단은 결국 삼성전자가 두 건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손해배상액은 1억9,140만 달러로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항소 절차에 착수했다. 삼성 관계자는 "특허청에 이미 무효심판을 청구해 놓았고, 우리 기술의 독자성과 혁신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한 건의 소송을 넘어,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의 특허 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OLED 시장은 스마트폰과 TV 같은 고급 전자제품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고, 삼성전자는 기술력 부분에서 세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특허권자들이 이 시장의 이익을 노리고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는 상황이다.
특히 마셜 연방법원은 애플, 인텔, 구글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연이어 피소되는 대표적인 '특허 소송지'로 꼽힌다. 이곳에서 소송을 내는 주체 중 상당수는 직접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특허 관리나 사용료 징수를 주된 사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 특허 전문 변호사는 "미국 배심원단이 현지 기업이나 특허권자의 편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고, 손해배상액도 커서 한국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는 앞으로 유사한 소송을 막기 위해 전 세계 특허 포트폴리오를 좀 더 꼼꼼히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특허청에 해당 기술의 유효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둔 상태다.
삼성 측은 "OLED 기술은 여러 기업이 함께 발전시킨 복합 기술이며, 픽티바가 주장하는 특허는 이미 공개된 선행기술에 기반하고 있다"며 "법적 절차를 통해 부당한 청구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방어를 넘어, 기술 주권을 지키는 문제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전자업계에서는 특허 소송이 경쟁사의 기술력 발목을 잡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유럽, 중국의 특허 관리 기업들과 여러 차례 법정에서 맞붙어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이 삼성의 연구개발과 특허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단지 제품 경쟁력을 유지하는 걸 넘어, 특허 자체를 방패이자 무기로 삼아 글로벌 전략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평결은 배심원단의 판단에만 따른 것이라 앞으로 판사가 이를 최종 확정해야 효력이 생긴다. 삼성전자가 항소할 경우 사건은 재심 절차로 넘어가게 되고, 특허청의 무효심판 결과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미국 특허 소송의 경우, 1심 배심 평결 이후에도 항소심이나 특허청 절차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다"며 "특히 삼성처럼 글로벌 기업이 엮인 소송은 오랜 기간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번 평결은 국내 기업들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안겨준다.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라면 혁신뿐만 아니라 '특허를 지키는 힘'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요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기술특허 분쟁이 빠르게 늘고 있고, 전자, 자동차, 배터리, 인공지능 등 다양한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글로벌 특허 리스크 관리 체계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법적 공방이 길어지더라도 기술적으로 정당하다는 점과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며 "이번 소송이 우리나라 기술기업의 권리를 지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