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대학로에 다시 한 번 바람이 분다. 13년째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이 올해도 대학로 스튜디오블루에서 막을 올린다. 故 김광석의 노래로 세대를 잇는 '바람으로의 여행'은 쥬크박스 뮤지컬의 범주를 넘어, 한국 소극장 공연문화의 정서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김광석의 명곡 20여 곡을 이야기로 엮은 음악극이다. 대학 시절 밴드의 꿈을 꾸던 여섯 친구들이 세월 속에서 겪는 사랑과 상실,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통해 노래가 인생을 껴안는 방식을 보여준다. 노래가 먼저이고 이야기가 뒤따르지만, 그 배치의 자연스러움은 오랜 시간 다듬어진 결과물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는 대사를 대신하고, 멜로디는 인물의 감정을 더 깊이 번역한다.
연출을 맡은 김태린 연출은 “이 공연은 김광석의 노래가 가진 시대의 정서를 가장 진실하게 전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실제로 무대는 화려함보다는 진정성을 택한다. 배우들은 마이크 하나 없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관객은 숨결 하나하나를 가까이서 듣는다. 그 러나 이러한 단순함이 오히려 김광석 노래의 본질인 인간적인 따뜻함과 서늘한 고독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공연의 가장 큰 미덕은 세대 간 감성의 교차에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1990년대를 살아낸 세대에게는 추억이지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새삼스러운 발견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에는 중년의 관객과 대학생이 함께 자리한다. 그들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살아온 인생을 같은 노래로 맞춰 부르는 장면은 이 공연이 가진 가장 순수한 마법이다.
젊은 배우들이 새로 합류하며 불어넣은 생동감도 이번 시즌의 중요한 변화다. 신현묵, 서예빈, 김가람 등 신예 배우들은 기존의 따뜻한 감성에 젊은 호흡을 더한다. 그들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세대의 목소리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같은 불안과 열정이 있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13년 동안 865회 공연, 16만여 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남긴 감정의 잔향이다. 무대 장치보다 배우의 목소리와 기타 한 대로 채워지는 공연은 소극장의 한계를 오히려 미학으로 전환한다.
'바람으로의 여행'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김광석의 노래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연출가의 말처럼, 공연은 “다시 노래할 용기”를 건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월의 무게 속에서도 여전히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하고도 큰 위로가 대학로의 작은 무대 위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故 김광석은 '가객(歌客)'이라 불린다. 진정성 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수많은 명곡을 남긴 싱어송라이터로, 대한민국에 포크송 붐을 일으킨 전설적인 가수다. 큰 기교 없이도 젊은 나이에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당대 최고의 음악인이었다. 사랑으로 아파할 때는 '사랑했지만', 이별을 극복할 때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군 입대를 앞두었을 때는 '이등병의 편지',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때는 '서른 즈음에', 좌절을 이겨낼 때는 '일어나', 사회의 정의를 외칠 때는 '광야에서', 인생의 황혼기에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고인을 보내는 순간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가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한국인의 인생과 감성을 가장 따뜻하고도 깊이 있게 노래한 목소리로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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