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연 문화체육부장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책임감과 걱정으로 온몸이 두려움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다.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데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막막함과 함께 새로움이 찾아왔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땐 함께 아장아장 걸으며 세상을 바라봤다. 풀잎에 스치는 바람 한 점, 물 웅덩이에서 튄 구정물 한 방울에도 까르르 웃으며 즐거웠다. 아이를 안고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마주할 때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이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데, 오히려 아이로 인해 세상을 다시 느끼고 사랑하는 중이다.그럼에도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엔 수많은 고민이 따른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고 각종 법과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현실에선 늘 모자란 법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 해도 중소기업 재직자들에겐 여전히 허울좋은 정책일 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자영업자들에겐 특히나 먼 나라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7위를 기록하는 긴 노동시간과 유연하지 못한 근무시간 속 조부모의 도움 없는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제쳐놓고도 여전히 육아와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은 남성의 가사 참여도를 뜻하는 여성 대비 남성의 무급 노동시간 비율은 23%에 그친다. 일본(18%)과 튀르키예(22%) 다음으로 낮다. OECD 평균은 52%로 우리나라의 두 배 이상이다. 현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100년 후 한국 인구가 현재의 15% 수준으로 급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도 여전히 사회의 변화 속도는 느리다.이 지점에서 인구보건복지협회 경기도지회가 저출생 극복 사회연대회의를 통해 펼친 캠페인 중 설문조사 내용은 흥미롭다. 9월6일 경기도의회 대회의실 로비에서 진행한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에서 ‘결혼’은 ‘선택’(133명)이란 응답이 ‘필수’(72명)를 월등히 앞섰다.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결혼에 대한 본인 선택은’이란 문항에 ‘해야 한다’(138명)가 ‘안 해도 된다’(61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인식으로 결혼은 선택이지만 자신의 문제가 됐을 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혼’ 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를 질문한 문항에선 가족·가정이(181명)이 가장 많았고 행복(161명), 사랑(150명)에 이어 돈(146명), 주택 마련(132명), 자녀(115명) 등이 뒤따랐다.
많은 이들이 결혼으로 가정과 행복, 자녀 등을 떠올리지만 행복에 대한 기대를 가로막는 요인 역시 많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낳지 못하는 사회는 개인과 사회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출산과 육아는 더 이상 엄마, 여성만이 책임지는 몫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평등하게 책임을 지고 육아의 기쁨을 나누는 것에서 출발해 마을공동체, 지역, 사회가 함께하는 육아로 변화해야 한다. 육아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는 소멸하지 않는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상상력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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