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지하는 이른바 '이 대통령 재판중지법(국정안정법)' 추진을 3일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민주당은 법안 철회에 "대통령실과 조율을 마쳤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법안 추진에 반대하며 "당 사법개혁 처리 대상에서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부연해 대통령실이 사실상 입법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법안 추진엔 반대하면서도 헌법상 재단 중단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재개에 선을 그었다.
'재판중지법'은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형사재판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상 이 대통령을 위한 '방탄 입법'이라는 논란이 일며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부담을 느낀 민주당이 '재판중지법' 추진 방침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전격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비리 핵심 1심 중형...민주당 2일 '재판중지법' 입법 추진 의지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대장동 개발 비리' 핵심 인물들에게 1심에서 징역 8년 등의 중형을 선고하자 국민의힘은 사실상 '이 대통령 유죄 판결'이라며 재판 재개를 촉구하는 등 공세를 높였고,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대장동 일당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옹호하며 법리적 해석을 달리했다.
이에 민주당은 2일 박수현 수석대변인을 통해 "이제부터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정 안정법', '국정 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부르겠다"며 "이달 안에 처리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법안 통과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방탄 입법' 비판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의식한 듯 바로 하루 뒤인 오늘(3일) 민주당은 '대통령실과 이미 조율을 마쳤고 재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대통령의 형사재판 중단은 헌법상 당연한 일이며,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 들이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당의 공식 스피커인 수석대변인이 나서 '재판 중지법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이를 철회해 민주당이 다시 한 번 '방탄 입법'을 시도했단 점에서 당분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입법을 예고하며 강한 드라이브를 건 지 하루 만에 철회하면서 '오락가락 행보'로 인해 오히려 이 대통령의 재판 리스크를 부각시켰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민의힘도 재판 중지법 시도 자체가 '이 대통령 방탄용'이라는 비판을 거듭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재판 중지법 처리를 시도하려다 본회의 직전 처리를 미룬 바 있다. 당시에도 이 대통령 방탄 입법 논란이 제기되자 속도 조절을 한 것으로 해석됐으며 이번에도 같은 비판이 계속되며 APEC 성과보단 '방탄 입법' 논란이 거세지자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 "재판중지법 보류가 아니라 아예 안 해" 하루 만에 3일 철회
'대통령실 메시지 있었나' 질문엔 "사전 의견 없었다" 밝혀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 등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지금은 관세 협상과 APEC 성과, 그리고 대국민 보고대회 준비에 집중할 때라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 지도부를 통해 결정했고 이 사안은 대통령실과도 조율을 거쳤다"며 "당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별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대통령실은 입장을 사전에 밝힌 적은 없지만 지도부 논의 결과를 통보했고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로부터 추진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대통령실이) 어떤 입장을 사전에 밝힌 바 없고 지도부 논의 결과를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게 아니라 아예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그는 하루 전인 2일 기자 간담회에서는 해당 법안을 두고 '국정안정법'이라고 명명하겠다고 밝히며 이미 국회 본회의에 계류된 만큼 이번 달 내 처리도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시사했다.
하루 만에 입장이 바뀐 이유에 대해 박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중지된 재판 재개 주장을 계속하고 있기에 (재판중지법 추진의) 원인 제공이 국민의힘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을 뿐, 법안 추진을 강하게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어제 언급은) 이 문제가 당 지도부 논의로 끌어올려질 가능성을 원론적으로 말씀드린 것이고 오늘 최고위가 끝나고 정 대표 등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법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향후 추진 여부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법안은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로 남아 있겠지만 민주당이나 대통령실이 이 대통령의 재판을 멈추게 하려는 어떤 행위도 없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6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에 계류된 상태로 당 지도부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본회의 처리가 가능한 상태다. 다만 민주당은 성공적인 APEC 개최와 한미관세협상의 무난한 타결 등으로 여론이 좋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와 직결된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다 굳이 여론의 역풍을 맞을 필요가 있느냐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 중지법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84조 등 다른 해결책들이 있기 때문에 성급히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강훈식 "대통령 형사재판 중단 헌법상 당연…헌법 84조에 따라 입법 불필요"
대통령실은 민주당이 추진하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중지법'에 대해 "불필요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3일 오후 열린 현안 브리핑에서 "헌법 84조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재판은 자동으로 중단된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다수 견해이며 헌법재판소도 같은 취지로 해석한 바 있다"고 말했다.
강 비서실장은 "헌법상 이미 재판이 멈추게 돼 있어서 따로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만약 법원이 헌법을 위반해 재판을 재개할 경우 그때 가서 위헌 심판을 제기하고 이와 더불어 입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 사법개혁 처리 대상에서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부연해 대통령실이 사실상 입법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강 실장은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않기를 당부 드린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의 이번 입장에 이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됐느냐'는 질문에는 "대통령의 생각이 대통령실의 생각과 같다"고 답하며 "대통령이 (자신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재판중지법에 대해 "해당 법안이 불필요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이에 대해서는 바뀐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힘 "李대통령이 대장동 사건의 핵심, 직접 입장 밝혀야" 공세
국민의힘은 여전히 이 대통령의 재판 재개를 주장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3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에 대한 재판은 오늘 다시 시작돼야 한다"며 대통령을 겨냥했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 법안(재판중지법)을 '이재명 유죄 자백법' 혹은 '헌법 파괴법'이라고 부를 것"이라며 공세 강도를 높였다.
민주당이 전면 철회를 발표한 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 재판 재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민주당이 '재판중지법' 추진을 일단 보류했지만 국민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일시적 숨 고르기 일뿐 '호떡 뒤집듯 말을 뒤집는' 민주당의 특성상 '지금 당장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 '완전한 철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APEC 정상회의 등 후속 평가가 언론에 도배되길 바랐겠지만 '이재명 방탄 입법'에 완전히 묻혀버려 대통령실에서 쓴소리라도 듣고 온 모양"이라며 "이 대통령의 죄가 살아 있는 한 이재명 방탄의 본능은 곧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장동 사건 1심에서 핵심 인물들이 잇따라 중형을 선고받았고 이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서 사건 구조의 핵심에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며 "대장동 일당의 1심 유죄 판결문에는 대장동 비리 몸통이 '성남시 수뇌부'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으며 '정진상이 알고 있는 것은 이재명이 다 알고 있다'는 성남시 직원의 검찰 진술도 기재했다. 직접 입장을 밝히고 이 대통령이 이와 무관하다면 재판을 열어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며 재판 재개를 촉구했다.
이충형 대변인도 3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의 재판중지법은 '사법농단법'이며 온 우주가 단 한 사람을 위해 돌고 있는 중세 천동설"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범죄 혐의도, 재판도 피할 수 있다는 발상은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법치주의와 사법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대통령에게 예외를 두자는 발상 자체가 헌법상의 평등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한다. 민주당은 '재판중지법'이라는 표현 대신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을 현혹하는 것도 정도껏 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대통령의 재임 중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는 재임 중 새로 기소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미 진행 중이던 재판까지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을 멋대로 해석해 헌법상 모든 재판이 중단된다면 굳이 민주당이 재판중지법을 따로 만들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의 재판중지법은 스스로 위헌 소지를 실토하는 자가당착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