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코엑스에서 3일 열린 ‘SK AI Summit 2025’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전환은 미리 짜인 계획이 아니라, 산업의 방향이 바뀐 필연적 결과”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AI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며 “전통 제조업 중심이던 SK가 빠르게 AI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AI와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된 산업 포트폴리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AI가 실제 생활로 들어온 건 2022년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이며, 그때부터 우리는 AI를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며 “지금의 변화는 준비된 기업이 방향을 잡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모든 계열사 CEO들이 AI를 중심에 둔 경영 플랜을 세우고 있다”며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제조·에너지 산업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정유·배터리·소재 같은 전통 제조업에도 AI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과 SK온은 이미 생산 효율과 품질 예측, 에너지 절감까지 AI 기반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I는 단순한 IT 기술이 아니라, 설계·조달·생산·물류·소비 전 과정의 질서를 다시 짜는 기술”이라며 “AI를 접목하지 않은 제조는 머지않아 정체를 의미한다”고 단언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60만원을 돌파한 데 대해서는 “시장 자체의 판단”이라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최 회장은 “주가에는 목표가 없다. AI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면서도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있는 만큼, 이 흐름은 단기적 랠리가 아니라 장기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 전망에 대해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되는 한 메모리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청주 공장을 가동하는 데 3년, 용인 클러스터 완공에는 4년 이상 걸린다”며 “AI 투자 속도가 공급의 리드타임을 초과하면, 수요 폭발과 공급 제약이 공존하는 구조적 슈퍼사이클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공급은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는 항상 시간의 산업”이라고 했다.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인수·합병(M&A) 가능성에는 “현재로선 자체 역량이 우선”이라고 못 박았다. 최 회장은 “이건(AI) M&A로 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우리의 제조 경쟁력은 남의 것을 사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혁신하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SK하이닉스의 진짜 경쟁력은 양이 아니라 품질과 신뢰”라며, “공급량보다 공급의 정확도와 효율이 SK하이닉스가 지키고 있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GPU 확보 시점과 관련해서는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은 충분히 제때 들어왔다"며 "지금은 확보가 아니라 활용의 문제다. 우리가 확보한 GPU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최 회장은 “한국의 AI 연산 수요는 아직 10~20메가 수준이지만, B2B와 에이전트형 AI가 본격화되면 폭증할 것”이라며 “AWS와의 협력으로 확보한 GPU는 시의적절한 결정이었다. 향후 한국형 AI 생태계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의 ‘AI 버블론’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최 회장은 “우리가 메모리를 팔고 GPU를 사는 건 시장의 정상적 순환"이라며 "사고판다는 이유로 버블이라 말하는 건 과장된 해석이다. AI는 광풍이 아니라 인류의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AI는 이미 경제의 언어가 됐고, SK는 그 언어를 쓰는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AI는 투기가 아니라 인류의 공용어”라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 대한 질문에는 미소로 답했다. 최 회장은 “젠슨은 아주 좋은 사람"이라며 "엔비디아가 한국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의 메모리가 없으면 블랙웰도, 루빈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SK하이닉스가 HBM에 집중돼 있다는 젠슨 황의 언급은 기술적 신뢰를 반영한 말”이라며 “우리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고객이 원하는 칩을 정시에, 제대로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AI 생태계에서 SK의 전략적 위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AI 경쟁은 이제 기업 간이 아니라 에코시스템 간의 경쟁"이라며 "우리는 AWS와 협력하지만, 특정 진영에 묶이지 않는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모든 글로벌 기업과 연합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AI 생태계는 진영이 아니라 연합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SK는 그 중심에서 연결망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영 리스크와 한일 협력 구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협력의 시금석을 놓은 단계”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은 “APEC을 통해 물꼬는 텄습니다. 한일 경제 연대는 강제도, 선택도 아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전략적 옵션입니다. 일본도 같은 입장”이라며 “신임 일본 총리와는 취임 전 만난 적이 있다. 기회가 되면 곧 공식적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용수 불확실성 논란에 대해서는 “1단계는 해결됐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2027년 1차 팹(Fab)까지 필요한 전력과 용수는 이미 확보했다"며 "이후 증설은 수요에 맞춰 순차적으로 확보할 것이고, 반도체는 한 번에 짓는 게 아니라 시장 속도에 맞춰 진화하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리스크에 대해 “완전한 해소는 아니지만,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다”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과의 협상 물꼬가 트였고, 일본과의 연대 가능성도 열렸다"면서도 "글로벌 산업에서 기회와 위기는 늘 공존합니다. 우리는 그 균형 위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SK의 AI 전환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AI는 SK의 새로운 언어이고, 메모리는 그 언어의 문법"이라며 "우리가 메모리를 잘하면, 세계는 우리 언어로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 AI Summit에서 최태원 회장이 남긴 이 말은 단순한 포부가 아니었다. 산업이 바뀌는 시대의 선언이자, AI 효율 시대의 서문이었다. SK는 AI의 미래를 움직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메모리, 그리고 그 메모리를 이해한 기업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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