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에서 연속성의 계약실험 섬주민들의 큰섬이주와 방파제 건설을 위한 세계적인 모금등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지금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ESG가 아니다. 그들에게 더 절실한 단어는 생존이다.
바다가 점점 높아지고, 식수가 염분에 잠기며, 젊은 세대가 떠나는 현실 속에서 ESG는 단순한 기업 경영의 윤리가 아니라 국가가 사라지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태평양의 투발루, 키리바시, 마셜제도, 피지, 솔로몬제도 등은 지금 기후 위기 최전선 국가로 불린다. 이들은 세계 배출량의 0.03%밖에 책임이 없지만, 기후 재앙의 90% 이상을 직접 감당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토지가 침수되고, 식수가 오염되며, 태풍이 매년 섬을 쓸어버린다.
이런 현실 속에서 ESG는 환경(Environment)보다 생존(Survival)의 문제로, 거버넌스(Governance)보다 국가의 연속성(Continuity)의 문제로 재정의되고 있다.
▲ 학교 기록, 주민등록, 문화유산은 모두 디지털 아카이브로 이전되고, 국적은 물리적 영토 대신 법적·데이터상의 형태로 유지된다. 투발루 정부는 이를 국가의 디지털 생명연장이라 부른다.
태평양 도서국의 생존 전략 중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기후이동(Climate Mobility)의 제도화다. 투발루는 이미 호주와 팔레필리 조약을 맺고 국민의 단계적 이주를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해수면이 더 오르면 국토는 사라지지만 국가는 클라우드 상에 남게 된다.
학교 기록, 주민등록, 문화유산은 모두 디지털 아카이브로 이전되고, 국적은 물리적 영토 대신 법적·데이터상의 형태로 유지된다. 투발루 정부는 이를 국가의 디지털 생명연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주 정책은 양날의 검이다.
젊은 세대가 빠져나가면 노동력과 경제 기반이 붕괴하고,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 사이의 분열이 커진다.
▲ 레질리언스 금융(Resilience Finance)이다. 태평양 12개국이 함께 만든 태평양 회복력 기금(PRF)은 외부 원조 의존을 넘어 자체 기후 펀드를 설계·운영하는 첫 시도다.
투발루 총리는 “기후 난민이 아니라 기후 시민으로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SG의 사회(Social) 항목이 바로 이런 인간 존엄과 공동체 유지의 관점에서 새롭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생존 축은 레질리언스 금융(Resilience Finance)이다. 태평양 12개국이 함께 만든 태평양 회복력 기금(PRF)은 외부 원조 의존을 넘어 자체 기후 펀드를 설계·운영하는 첫 시도다.
재난이 발생하면 수개월이 아닌 수일 내 자금을 현지에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국제기구의 지원이 복잡한 절차 속에 늦게 도착하던 문제를 끊어내겠다는 선언이다.
이에 더해 태평양 재난보험공사(PCRIC)는 지진이나 폭풍이 발생하면 인공위성 데이터를 근거로 즉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매개변수 보험을 운영한다.
한 통의 서류도 필요 없다. 마셜제도는 이 제도를 통해 태풍 피해 직후 72시간 만에 재난 복구비를 받았다. 세계은행과 유엔은 이 모델을 소규모 도서국의 가장 혁신적인 금융 메커니즘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국제 무대에서 벌어진다. 마셜제도와 솔로몬제도는 해운 배출에 탄소가격(Carbon Levy)을 부과하자는 안을 국제해사기구(IMO)에 제출했다.
“해운 탄소세는 선진국의 비용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비용”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섬나라들은 매년 수십억 달러의 해운 연료 소비에서 단 1달러의 세금을 걷어도, 그것이 해안 방파제와 담수화 시설의 자금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의는 단순히 환경 세금이 아니라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의 문제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한 국가들이 피해국의 생존권을 보상해야 한다는 윤리적·정치적 메시지다.
ESG의 거버넌스(Governance)가 단순한 기업 투명성을 넘어 국제 정의와 분배 구조의 개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 세계은행은 이 지역의 방파제·담수화·지하수 보호 사업에 1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태평양의 생존 ESG는 또한 물과 주거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키리바시에서는 해수면이 매년 4mm씩 상승하고 있다. 이미 70% 이상의 가정이 해안 침수 피해를 겪었다. 식수는 소금기에 오염돼, 비가 오지 않으면 하루 두 컵의 물로 버티는 날이 많다.
세계은행은 이 지역의 방파제·담수화·지하수 보호 사업에 1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하지만 이들의 GDP를 모두 합쳐도 5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투자보다 존재가 우선”이라고 외친다. ESG 투자는 수익률이 아닌 생명률(Life Rate)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리바시의 한 교사는 “우리의 생존율이 바로 당신들의 ESG 점수”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세계가 잊고 있던 ESG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최근 피지 정부는 국가 예산과 기후 예산을 통합 관리하는 기후 재정 정렬 시스템을 도입했다. 국가 예산의 17%가 기후 적응·복구에 직접 투입된다. 동시에 그린 본드와 블루 본드를 연계해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모델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여전히 단 하나다. 바다에 잠기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것. 태평양의 섬나라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이들은 인류의 미래를 미리 살아내고 있는 선발 경고국(early warning nations)이다.
그들의 ESG는 교과서 속 경영전략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에서 지속가능하게 살기 위한 예행연습이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를 바꿀 뿐이다.” 투발루의 외교관이 COP 회의장에서 남긴 이 한마디는 태평양의 생존 ESG를 가장 명확히 요약한다. ESG가 자본의 언어라면, 태평양은 이제 그것을 생명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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