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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의 전처 이모 씨는 지난 2일 SBS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에서 “억울한 것도 있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지만 지금 와서 이런 얘길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다고 죽은 동생이 살아나지도 않지 않나”라고 말했다.
1994년 처제를 성폭행 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이춘재는 2019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특정됐다.
사건 관련 이춘재의 충격적인 기행도 전해졌다.
이 씨는 “친구가 장기로 빌린 모텔방이 있었는데 한번은 밖이 시끄러웠다. ‘무슨 소리지?’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모텔 옆 주택에서 시체가 실려 나가고 있더라. 그 사람(이춘재)도 제 옆에서 그 장면을 같이 봤다. ‘너무 무섭다’라고 했다”며 “그 사건도 이춘재가 한 거라는 얘기를 경찰에 들었을 때 말문이 턱 막혔다”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왜 살려뒀을까? 나는 왜 안 죽였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찰이 ‘아이 엄마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 씨는 “그 사람(이춘재) 루틴이 있는데 저는 그거에 맞춰 움직였다”며 “루틴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안 되면 저한테 그냥 화풀이한다. 눈빛이 돌변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도 소름 끼치는데, 그러면 절대 건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정말 이해 안 가는 건 문을 잠그는 것”이라며 “잠깐 집 앞에 아이 데리고 외출하고 오면 아무리 두드리고 전화해도 절대 문을 안 열어준다. 열쇠공을 불러서 들어가 ‘왜 문을 잠그냐’고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이 씨 역시 이춘재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씨는 “(이춘재가) 이유 없이 저를 때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자다 깨서 기저귀 바람으로 나왔다. 아이는 엄마가 맞고 있으니까 아빠를 말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쳐서 아기가 떼구루루 굴렀다”며 “그걸 보고 어떤 엄마가 가만히 있나. 대들었다가 주먹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 와중에 병 주고 약 주더라. 멍 빨리 없어진다고 그 사람이 약도 사다 줬다”고 털어놓았다.
이춘재는 1986년 9월∼1991년 4월까지 경기 화성에서 잇따라 발생한 10건의 살인과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 1989년 7월 화성 초등생 실종,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 등 사건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2019년 경찰 재수사 과정에서 자백했다.
살인 말고도 34건의 성범죄 또는 강도 행각을 벌였다고 털어놓은 이춘재는 피해자 진술 등을 확보한 9건을 제외한 다른 사건들은 검찰 송치 대상에서 빠졌다.
이춘재는 범행 동기에 대해 “별다른 계획이나 생각을 하고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처럼 했다”며, 성범죄에 대해선 “여성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범행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019년 7월 경찰로부터 이춘재가 자백한 23선의 사건은 모두 혐의가 인정되나, 공소시효가 지난 것이 명백해 2020년 12월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이춘재에게 초등학생 딸 김모 양을 잃은 김용복 씨는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선고를 불과 두 달 앞둔 지난 2022년 9월 숨졌고, 어머니는 2000년 소송을 제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김용복 씨의 딸(당시 8세)은 1989년 7월 화성시 태안읍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사라졌다.
30년간 미제 가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2019년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가 이춘재로부터 “김 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진술을 확보하면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됐다.
다만 이 또한 공소시효 만료가 되면서 수사 과정에서 김 양의 유골 일부를 은닉한 혐의 등을 받은 당시 경찰관들도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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