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2022년 부영그룹과 금천구가 내세운 ‘지역 첫 대학병원급 종합병원’ 건립 약속이 3년째 공터 위에서 멈춰 있다. 지하 5층·지상 18층, 809병상 규모로 홍보된 대형 프로젝트지만, 착공은 올해 2월 신고 접수 단계에 머물렀다. 공공성을 내세운 민간 의료사업임에도 재원 조달·운영 책임·행정 감독 등 핵심 구조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역 숙원사업의 지연을 넘어, 공공사업에서의 제도적 검증 부재가 드러난 사례로 지적된다.
◇착공 신고는 이제 접수…3년간 ‘예정’ 속에 멈춘 현장
금천구는 2025년 2월 21일 착공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접수번호도 공개됐으며 현재 서류 보완 중으로, 구는 “올해 11월 말 수리 목표”라고 설명했다. 구청 답변에 따르면 착공 연기 이력은 한 차례 있었고 설계 변경은 없다.
행정 절차상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협약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이다. 2022년 이후 진행 상황은 주로 “착공 예정” 단계로 공지되었고, 사업 주체 측이 구체 일정과 실행 구조를 외부에 상세히 공개한 문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토양 오염 규제는 해소…이제는 후속 행정과 실행력의 영역
부지의 토양 불소 오염은 수년간 지연 사유로 제시됐다. 2024년 12월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해당 부지는 정화조치 재명령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천구는 “법령 개정으로 정화조치 의무가 해제됐다”고 밝혔다. 위해성 관련 후속 행정은 중앙정부 담당 부서가 처리한다.
규제 요인이 해소된 만큼, 이후 사업 주체의 실행 계획 제시와 공개 로드맵이 따라오는지가 관건이다. 아직 현장에서 가시적 착공 준비는 확인되지 않는다.
◇공공 의료 사업이라면, 자금 구조도 명확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민간 의료법인이 주도하는 공공 의료 인프라 구축 모델이다. 금천구에 따르면 2022년 협약 시 재원 조달 계획은 제출되지 않았고, 구가 이를 검증하거나 보완 요구한 기록도 없다. 우정의료재단은 법에 따라 매년 사업계획서를 제출 중이지만, 수천억 규모 공공의료급 시설 건립 재원과 집행 구조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곧 ‘없다’와 다르다. 다만 공공성을 내세운 민간 의료 프로젝트라면, 재정 투명성과 책임 구조가 선명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응급·취약층 의료…선언을 제도로 이어갈 장치 필요
금천구는 “응급의료센터 설치 계획 문서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협약에는 저소득층 지원 조항이 있으나, 이행 점검체계나 운영 책임 관련 공식 문건은 확인되지 않는다.
공공 의료 기능은 선언보다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 운영 인력, 취약계층 접근성, 응급의료체계 등이 문서화되어야 공공성은 제도화된다.
◇행정은 독려했지만, 제도적 감독·정보 공개 체계는 미비
금천구는 2022년 이후 매년 TF를 운영해 독려해왔다. 2022년 5회, 2023년 4회, 2024·2025년 각 2회다. 회의는 주로 진행 상황 청취와 착공 촉구에 초점을 뒀다. 구는 “선투자와 공적 약속이 있었고 임기 내 착공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즉, 행정은 추진 의지를 표명했으나, 공공성 이행을 점검하거나 사업 실행력과 재정 구조를 체계적으로 관리·검증하는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았다.
◇공공 명분 아래 사업성 개선…그만큼 공공성 회수가 필요하다
서울시 준공업지역 제도 개선으로 용적률이 최대 400%까지 확대되면서 사업성은 개선됐다. 공공 의료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민간 사업자가 규제 완화 혜택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공공 기능 확약 ▲자금 투명성 ▲이행 보고 체계 ▲지자체 감독 구조 등 공공 환수 장치가 균형 있게 마련돼야 한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정보로는 이러한 장치가 제도화된 흔적은 제한적이다.
◇금천의 숙원은 ‘기다림’이 아니라 ‘구조화된 실행’
지금 남은 것은 준비 중인 착공 신고, 행정적 독려 기록, 그리고 미완의 부지다. 민간이 공공 인프라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상, 공공의 신뢰를 얻는 방식도 민간의 자율 선언이 아닌 제도적 투명성과 계획 제시로 이뤄져야 한다.
공공을 이야기한 순간, 선언은 약속이 된다.
착공 예정이라는 문장을 넘어설 유일한 길은 ▲재원 조달 및 집행 구조 공개 ▲공공의료 기능 및 서비스 범위 명확화 ▲운영 책임 및 환수 장치 문서화 ▲지자체 상시 감독·점검 체계 구축 ▲구체 일정 및 이행보고 절차 마련 등의 공개와 제도화다.
금천 주민이 원한 건 약속이 아니라 실행이다. 이 사례는 특정 사업자 비판을 넘어, 민간 주도 공공의료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제도적 검증 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공익을 내세운 약속이라면, 이제는 구조와 투명성이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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