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최대 외교 관문으로 꼽힌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쳤다. 장기화하던 대미 관세협상, 미중 전략경쟁, 아태 질서 재편 등 불확실성이 중첩된 상황 속에서 한미·한중·한일 외교를 잇달아 소화했고, 다자외교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확보했다. 경제·안보·통상 아젠다를 패키지로 엮어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향후 한국 외교의 과제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정밀 운용으로 옮겨간다.
◇한미 관세·안보 패키지…‘불확실성 제거’와 산업 지형 설계
이번 외교전의 최대 고비는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관세 협상이 지연되며 ‘빈손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양국은 회담 직전 연간 최대 200억달러 분할 투자 합의를 끌어내며 돌파구를 만들었다. 이로써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레임이 에너지·AI·첨단제조로 구체화됐고, 관세 리스크도 상당 부분 정리됐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NSS) 문제를 정면 제기해 승인을 받아내면서 안보 축도 복원됐다. 경제·안보를 하나의 전략 패키지로 묶어낸 셈이다. ‘취임 5개월 만에 외교·경제·안보의 삼각축을 동시에 재정렬했다’는 의미가 크다.
◇한중·한일 외교 ‘균형 재조정’…자율성·안정 우선순위
한미 회담 직후 진행된 한중·한일 정상외교는 균형 메시지가 분명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첫 회담에서 양국은 전략소통 채널을 재가동하고 상호 호혜적 발전 방향을 확인했다. 대중 견제 우려를 누그러뜨리며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부각시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는 셔틀외교 유지를 재확인하고 실무 협력 프레임을 고도화했다. 강경 보수 내각 출범 국면에서 안정적 협력 기반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한미일 공조를 기본 축으로 하되,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실용외교의 골격이 드러났다.
◇‘경주선언’ 조율·신아젠다 선점…플랫폼 외교 가시화
다자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경주선언’ 도출 과정에서 자유무역 문구를 둘러싼 갈등이 컸지만, WTO 표현을 장관급 공동성명으로 보완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합의를 이끌며 조정자 리더십을 입증했다.
APEC 최초 AI 공동선언, 인구구조 대응 프레임워크 채택을 주도하며 미래 어젠다도 확보했다. 엔비디아 GPU 26만개 확보, 글로벌 기업 90억달러 투자 유치 등 실질 성과가 더해졌다.
특히 미중 정상이 한국 무대에서 ‘관세전쟁 휴전’ 흐름을 연출한 점은 한국이 가교국가·플랫폼 외교국으로 설계되는 장면이었다.
◇관세 문구 디테일·미중 정세·국내 정치·북미 대화 등 과제 남겨
성과만큼 과제도 명확하다. 관세·안보 합의 내용을 양해각서·팩트시트 단계까지 정교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디테일에서 국익이 갈린다. 미국의 보호무역 재부상, 중국의 비확산 강조, 일본 내 정치 일정에 따른 과거사 이슈 부상 가능성 등 주변 변수 관리도 필요하다.
북미 대화 재점화 역시 시험대다. 한국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지속하려면 협의 채널을 유지하고 외교 모멘텀을 관리해야 한다.
국내 정치 환경 또한 변수다. 대미 투자 특별법과 협상 문구 투명성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후속 이행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대통령이 폐막 기자회견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포용적 질서”를 재확인한 만큼, 앞으로는 균형과 정밀함이 결합된 ‘실용외교 2단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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