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이 이젠 계륵이 됐다. 고환율과 소비 둔화, 높은 임대료 부담이 겹치면서 면세점 업계의 ‘심장부’였던 공항에서 신세계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잇따라 철수를 결정했다. 한동안 국내 면세시장의 상징이었던 인천공항이 더 이상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의 모회사 신세계는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인천국제공항 제1·2터미널에 걸친 DF2 권역(화장품·향수·주류·담배)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했다. 총 4709㎡ 규모의 해당 구역은 내년 4월 27일까지 운영한다. 회사 측은 “운영을 지속할 경우 손실이 더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며 “명동 시내점과 DF4(패션·잡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수익성 중심의 체질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구역에서 매월 50억~1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발 앞서 지난달 호텔신라도 인천공항 DF1 권역(주류·담배·화장품·패션 등)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2023년 사업권을 따낸 지 2년도 채 안 됐지만, 고환율과 소비 둔화 속에 매달 수십억 원의 손실이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신라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임대료 40% 인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 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인천지방법원은 신라 25%, 신세계 27.2%의 임대료 인하를 권고했지만, 공항공사가 이의신청을 내면서 효력은 없었다. 결국 두 회사 모두 ‘버티기’ 대신 철수를 택했다.
인천국제공항은 오랫동안 ‘면세점 황금구역’으로 불렸다. 공항을 찾는 사람이 워낙 많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몰리면서 “입찰만 따내면 매출이 보장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 인천공항 여객 수는 2010년 3000만명에서 2019년 7000만명대로 갑절 넘게 늘었다. 코로나19로 2020년에는 1200만명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다시 7000만명 수준으로 회복했다. 올해도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재개되면서 비슷한 수준이 예상된다.
하지만 여행객 수가 회복돼도 장사는 예전만큼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공항 임대료가 이용객 수에 비례해 부과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여객이 늘수록 오히려 부담이 커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신라와 신세계는 한 사람당 약 9000원의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10년 계약을 맺었지만,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적자가 쌓였다.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패턴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단체관광 중심에서 벗어나, 친구끼리 여행하며 개별 쇼핑을 즐기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꼽은 주요 쇼핑 장소 중 공항면세점 비중은 2019년 25~30%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14.2%로 반토막 났다. 반면 올리브영·무신사·다이소 등 ‘올다무’ 로드숍은 49.6%로 1위를 차지했다. 체험형 콘텐츠, 가성비 추구 등 소비성향이 변화한 것이다.
면세점 상품 가격이 달러를 기준으로 산정되는 만큼 고환율 기조도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광객이 예전만큼 회복했지만 소비 방식이 종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환율 상승과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공항 면세점이 더는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면세산업 전체로 보면 이런 흐름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한때 중국 보따리상(다이궁)을 끌어들이려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업계 수익성이 크게 흔들린 적이 있다. 한국에서 면세품을 사들여 중국에서 웃돈을 붙여 되파는 다이궁은 면세업계의 ‘큰손’으로 통한다. 업체들이 이들을 붙잡기 위해 ‘송객수수료’라 불리는 알선비용을 쏟아내면서, 그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 2019년 1조원이던 송객수수료는 2022년 7조원으로 치솟았다. 손님을 늘리려 쓴 돈이 되레 이익을 갉아먹은 셈이다. 공항 면세점의 위기도 이 연장선에 있다.
한편 인천공항공사는 신세계·신라의 사업권 반납 절차를 진행 중이며, 후속 재입찰 일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면세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 중국국영면세그룹(CDFG) 등이 차기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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