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젠슨 황(62)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 K-POP 광장에서 열린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무대에서, 당시 참석했던 이재용(57)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55) 현대차그룹 회장을 향해 지극히 사적인 일화를 꺼냈다.
젠슨 황 CEO는 "제가 한국에 온 이유"를 설명하며 "1996년 한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며 "제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편지였는데, 한국에 대한 놀라운 비전이 있었고 그 편지로 인해 한국에 처음 오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이재용 회장이 "저희 아버지(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확인하면서, 29년 전의 이 편지가 엔비디아와 삼성의 관계에 역사적인 시발점이 되었음을 언급다.
이재용 회장은 젠슨 황 CEO를 향해 "젠슨은 꿈도 있고, 배짱도 있고, 제일 중요한 건 정이 많은 친구"라고 말하며, 두 최고경영자(CEO) 간의 깊은 신뢰와 유대감을 과시했다.
기술과 비전이 있는 사람이면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소통
이건희 회장의 인재 철학 빛나
젠슨 황에 편지를 보낸 이건희 회장은 당시 '인재를 양성하고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품질 경영을 위해 불량품을 소각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을 때다. 따라서 1996년 편지 일화는이건희 회장의 인재 철학과 일맥 상통하고 있다.
젠슨 황의 엔비디아가 설립된 것은 1993년이다.
1996년은 회사가 창립 3년 차로, 벤처 캐피털의 초기 투자를 받기 전이었으며, 나스닥 상장(1999년)은 꿈도 꾸기 어려웠던 극초기 스타트기업이었다. 당시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선포하고 품질 경영에 사활을 걸던 시기였다.
당시 엔비디아는 GPU라는 혁신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 GPU(Graphics Processing Unit)란 컴퓨터 그래픽과 이미지 및 영상 처리에 특화된 고성능 연산 장치다. GPU는 수백에서 수천 개의 병렬 처리 코어를 가지고 있어 여러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고화질 3D 그래픽 렌더링, 동영상 처리뿐 아니라 인공지능, 기계 학습, 과학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CPU(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가 순차적 작업에 강한 반면, GPU는 병렬 작업에 특화되어 있어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GPU는 내장형(iGPU)과 독립형(dGPU)으로 나뉘며, 독립형은 별도의 그래픽 카드로 고성능 작업에 주로 사용된다.
당시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던 'GPU' 기술의 잠재력을 이건희 회장이 포착하고, 직접 창업자에게 편지를 보낼 만큼 적극적인 교류를 시도했다는 점은 그의 기술 선견지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컴퓨터는 인류의 두뇌'라는 이건희 회장의 철학이 AI 시대의 핵심인 GPU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음을 방증한다.
특히 젠슨 황 CEO는 편지를 보낸 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언급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직급이나 기존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기술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직접 소통하려 했던 초월적인 인재 중심 경영 철학의 일화로 해석된다.
'아버지의 비전'과 '아들의 파트너십'
한편 이날 젠슨 황 CEO의 1996년 편지 발언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바로 다음 날인 10월 31일 발표된 삼성과 엔비디아의 대규모 협력을 극적으로 포장하는 '역사적 복선'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날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반도체 개발 및 생산 전반에 AI를 적용하는 '반도체 AI 팩토리' 구축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삼성은 향후 수년간 5만 개 이상의 엔비디아 GPU를 도입해 AI 팩토리 인프라를 확충하고, 엔비디아의 '옴니버스(Omniverse)'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여 설계부터 공정, 품질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지능화할 계획이다.
결국 젠슨 황의 발언은, 이건희 선대 회장의 1996년 비전이 이재용 현 회장의 시대에 와서 한국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AI 동맹'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맺었음을 선언하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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