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수량·최대순간풍속 1∼5위 모두 '태풍' 영향
연간 산지 4천㎜, 남동부 2천㎜ 많은 비…연평균풍속 제주 고산이 전국 1위
[※ 편집자 주 = '극한기후'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최악 폭염', '괴물 폭우' 같은 표현도 낯설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남쪽 끝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겨지지만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을 가장 먼저 맞이하며, 나날이 심각해지는 폭염·폭우·폭설 등 극한기후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있고 관광산업과 농·수산업 의존도가 높아 위험 기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제주가 겪어온 기상 재해를 되짚어 보고 방재 대책을 살펴보는 기사를 5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바람·돌·여자가 많다며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려온 제주는 말그대로 바람이 많이 불고, 국내 대표 다우지로 꼽힐 정도로 비도 많이 온다.
특히 한반도로 향하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위력이 가장 강할 때 가장 먼저 태풍을 맞는 탓에 기록적 비바람이 관측되기도 한다.
◇ 하루 420㎜ 물폭탄…일 강수량 1∼5위 모두 '태풍' 탓
1923년부터 기상관측이 이뤄진 제주(제주지방기상청) 지점의 일 강수량 역대 순위는 1위 420㎜(2007년 9월 16일), 2위 310㎜(2018년 10월 5일), 3위 301.2㎜(1927년 9월 11일), 4위 299㎜(2011년 8월 7일), 5위 281.7㎜(1927년 8월 4일) 순이다.
모두 태풍이 세운 기록이다.
이 지점에서 192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비가 가장 많이 내린 날인 2007년 9월 16일은 역대 제주에 가장 큰 피해를 남긴 태풍 '나리'가 덮친 날이다.
당시 제주에는 하루 420㎜의 폭우가 퍼부었다. 물 빠짐이 좋은 지질 구조상 홍수 걱정이 적었던 제주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한 물난리가 나 13명이 목숨을 잃고, 1천억원대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2위를 기록한 2018년 10월 5일에는 흔치 않은 10월 태풍 '콩레이'가 나리에 버금가는 비를 몰고 왔다.
다만 단시간에 폭우가 집중됐던 나리 때와 달리 온종일 비가 내렸고, 폭우에 하천 수위가 올라가자 저류지 수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하면서 물난리는 피할 수 있었다.
3위와 5위는 둘 다 1927년 여름에 기록됐다.
제주지방기상청이 발간한 '제주역사문화와 함께 하는 제주기상 100년사'에 따르면 1927년 9월 10∼14일 태풍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쳤고, 이보다 약 한 달 전인 1927년 8월에도 태풍 영향으로 제주에 많은 비가 내려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의 홍수로 인해 곡선으로 약 200m를 회류하던 산지천 물줄기가 거의 직선으로 바뀌었고, 제주성 안팎을 이어주던 산지천 홍예교도 무너졌다.
1927년의 물난리는 '산지천 대홍수'라고 불리며 두고두고 회자됐다.
4위인 2011년 8월 7일은 태풍 '무이파'가 제주를 덮친 날이다. 이때도 물 폭탄이 퍼부었으나, 저류지 수문을 열어 수해를 줄일 수 있었다.
◇ 여름∼가을 제주도 할퀸 강풍…'태풍' 영향
기록적인 강풍도 종종 관측된다.
제주 지점의 일 최대순간풍속 기록은 1위 초속 60m(2003년 9월 12일), 2위 초속 47m(2016년 10월 5일), 3위 초속 46.9m(1959년 9월 17일), 4위 초속 41.6m(1986년 8월 28일), 5위 초속 41.5m(1972년 7월 26일) 순이다.
강풍 기록 역시 모두 태풍 영향으로 쓰였다.
가장 강한 바람이 관측된 2003년 9월 12일은 태풍 '매미'가 제주를 강타한 날로, 제주와 고산 지점에서 초속 60m의 최대순간풍속이 관측됐다.
강풍경보 기준이 '순간풍속 초속 26m 이상'이고, 바람 세기를 비교할 때 사용하는 '보퍼트 풍력계급'에서 가장 높은 12계급(싹쓸바람) 기준이 '초속 32.7m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강풍이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국내 기상관측 사상 가장 강한 바람이었다. 그 이후 2006년 10월 23일 강원 속초에서 초속 63.7m가 관측돼 기록이 경신됐다.
매미 내습으로 인해 제주에서는 2명이 숨지고, 갖가지 시설물이 파손돼 481억원 상당의 재산피해도 발생하는 등 큰 생채기가 남았다.
2위는 흔치 않은 10월 태풍 '차바'가 제주를 덮쳤던 날 기록됐다.
강한 바람에 곳곳에서 정전이 발생해 양식장 대규모 폐사가 속출하고, 정수장도 정전돼 물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정박 중이던 선박들이 전복되거나 침몰하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풍력발전기 날개가 부러지는 등 시설물 피해도 속출했다.
3위는 60여년 전 제주를 비롯해 전국에 막대한 피해를 남긴 태풍 '사라' 때 기록됐다.
당시 제주에서는 사망 11명, 부상 10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재산 피해도 25억여원에 달했다.
이어 4위는 태풍 '베라', 5위는 태풍 '리타' 내습 당시 기록됐다.
◇ 연간 3분의 1 이상은 비…산지와 남동부엔 많은 비, 서부·북부엔 바람 강해
"비바람 때문에 제주 여행 망쳤어요.", "제주에 올 때마다 비가 내려요."
국내 대표적 관광지인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종종 '날씨 요정'이 찾아오지 않았다며 울상을 짓곤 한다.
오름·곶자왈 탐방이나 골프·해수욕 등 야외 일정을 잡아놓았다가 기상악화로 취소 또는 변경하게 되고, 항공편 결항으로 발이 묶이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제주도 연간 강수일수(일 강수량 0.1㎜ 이상인 날) 평년값은 124.4일이다. 많게는 1980년에 159.5일에 달했고, 지난해의 경우 145.5일이었다. 연간 3분의 1 이상은 비가 내리는 셈이다.
강수량도 많은 편이다.
기후 평년값이 제공되는 전국 219개 지점 중 제주지역 6개 지점의 연 강수량은 성판악 4천381㎜(1위), 성산 2천30㎜(2위), 서귀포 1천989.6㎜(3위), 제주 1천502.3㎜(19위), 고산 1천182.9㎜(167위), 추자도 1천277.7㎜(188위)다.
섬 안에서도 지역별 편차가 크며, 특히 산지와 남동부의 강수량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다.
바람은 어떨까.
도내 지점별 연평균 풍속은 제주 초속 3.3m, 고산 초속 6.8m, 성산 초속 3.1m, 서귀포 초속 2.5m다.
전국 219개 지점 중 고산이 연평균풍속 1위며 제주 15위, 성산 17위, 서귀포 32위 등이다.
또한 제주도의 폭풍일수(일 최대풍속 초속 13.9m 이상인 일수) 평년값은 129일이다. 강릉·서울·인천·대구·부산·목포 등 제주도와 기상관측 역사가 비슷한 전국 6개 지점의 평균 폭풍일수(21.5일)보다 월등히 많다.
여행 중 궂은 날씨를 만나면 걱정하거나 실망하겠지만, 너무 울상만 지을 필요는 없다.
폭우가 내린 뒤에만 나타나는 비경이 선물처럼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라산에 폭우가 쏟아지면 정상 분화구인 백록담은 빗물이 들어차 만수위를 이룬다.
비가 그친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만수를 이룬 백록담 풍경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한라산은 국내 최고 다우지역으로 꼽힌다. 수백㎜, 많게는 1천㎜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부 지역의 연간 강수량에 달하는 비가 한 번에 퍼붓는 것이다.
폭우가 내릴 때는 한라산 입산이 통제되지만, 비가 그친 뒤 맑게 개면 귀한 광경을 직접 볼 수도 있다.
또한 한라산 성판악 탐방로의 사라오름(해발 1천324m·명승 83호) 산정호수도 폭우 뒤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 '작은 백록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귀포시 강정동 악근천 상류의 '엉또폭포'도 폭우가 내려야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엉또폭포는 평소 물이 흐르지 않다가 상류부에 최소 70㎜ 이상의 비가 내린 뒤에만 폭포수가 쏟아진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높이 50m 기암절벽 아래로 엄청난 양의 폭포수를 쏟아내는 모습은 주변의 울창한 난대림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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