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석촌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따라 걷다 보면 유리 너머로 은은한 빛이 스며드는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이 바로 더 갤러리 호수다. 도심 속 호수의 여유와 예술의 숨결이 만나는 이 장소에서 나는 김흥수 화백의 회고전 ‘하모니즘’을 마주했다.
전시 주제인 ‘하모니즘’은 김흥수 화백이 평생 탐구해 온 조형언어였다. ‘구상과 추상의 조화’라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조형적 질서를 이루는 세계관이었다. 화면 속에서 인체의 형상이 추상적 선율로 흩어지고, 색면들이 감정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조화란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는 내가 늘 작품 속에서 추구해온 ‘공존’의 개념과도 닮아 있었다. 작품들을 따라 걸으며 나는 작가의 생애를 함께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실험적 드로잉에서부터 노년기에 완숙해진 색의 조율까지. 특히 ‘형상의 언어’ 파트에서는 인간의 몸이 단순한 형태를 넘어 생명력 그 자체로 드러났다. 그의 붓질에는 세월의 흔적이 아닌, 오히려 삶의 호흡이 담겨 있었다. ‘그림이란 결국 살아 있는 것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화백의 신념이 느껴졌다.
동양화를 전공한 나는 지금도 한지 위에 아크릴 채색으로 나만의 세계를 그린다. 그래서인지 김흥수 화백이 남긴 붓의 궤적을 볼 때마다 재료와 색이 가진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형태를 그린 것이 아니라, 색과 색이 만나는 순간의 ‘관계’를 그렸다. 그 관계는 때로 부드럽게, 때로는 충돌하듯 번져나갔다. 마치 인간과 자연, 전통과 현대,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의 단면 같았다.
전시장을 나서며 석촌호수의 바람이 내 볼을 스쳤다. 김흥수 화백이 그토록 이야기하던 ‘하모니’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이렇게 매일의 순간 속에서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로 다른 색이 만나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듯 사람과 사람, 예술과 삶이 어우러지는 순간. 그것이 바로 예술이 지향해야 할 조화의 본질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나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나는 나의 작품에서 어떤 조화를 꿈꾸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마음속 깊이 남았다. 나 또한 ‘행복’과 ‘희망’, 그리고 ‘공존’의 메시지를 그림 속에 담아내려 한다. 김흥수 화백의 ‘하모니즘’은 그 길 위에서 나에게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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