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한 해 동안의 국정의 성적표이자 정치의 민낯이 속속히 드러나는 무대다. 올해도 곳곳에서 날 선 질의와 격돌의 순간들이 국민의 눈길을 끌었다. 정쟁 속에서도 빛난 질문, 치열한 논쟁 그리고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2025 국감 장면들]에서는 한 주간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 현장에서 포착된 결정적 순간을 소개한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올해 국정감사는 마지막 주까지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마무리됐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에게 ‘무(無)정쟁 국정감사’를 하자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주요 상임위원회마다 격한 정쟁성 질의와 공방이 이어졌고 장외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비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국정감사 초반부터 이어진 ‘정치쇼’ 논란은 끝내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의 ‘쇼츠용 질의’와 자극적인 발언이 화제를 모으는 사이, 정작 정책 개선을 위한 질의는 묻혔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야는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 국정감사 출석 여부, 조희대 대법원장 재판개입 의혹,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 딸 축의금 논란 등을 두고 막판까지 충돌을 이어갔다. 국민 앞에서 정책 국정감사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은 공허한 약속이 된 모양새다.
이에 본보는 국정감사 마지막 주를 맞아 지난 한 주 동안 국회 곳곳에서 쏟아진 인상적인 발언과 장면을 모아 국정감사 현장을 다시 짚어본다.
장면 하나. 미술 시간인줄…국정감사서 ‘고릴라’ 그린 국회의원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국정감사 현장에서 ‘그림 실력’을 뽐내며 뜻밖의 화제를 모았다. 다른 의원의 질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 유 의원이 노트북 화면에 고릴라 사진을 띄워놓고 연필로 정성스럽게 캐리커처를 그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정감사 중 데생’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면에 직무태만 논란이 일자 유 의원은 다음날 SNS에 “실수한 거고 변명할 게 아니다. 잠깐의 일탈이었다”고 사과했다.
‘예술적 해명’도 이어졌다. 유 의원은 “질의 전에 긴장을 풀거나 질의 후에 생각했던 만큼 질의가 매끄럽지 못해 짜증 날 때 이를 삭이기 위해 그냥 생각나는 동물 캐리커처를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이번엔 평소보다 그림이 커서 시간이 조금 걸렸고 틈나는 대로 조금씩 그렸다며 작품 설명도 덧붙였다.
국회의원이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회의 중 휴대폰 보기 등 딴짓으로 구설에 오른 적은 있지만 대놓고 미술시간을 가진 경우는 흔치 않다. 국정감사 현장은 의원석 뒤편으로 기자단과 보좌진이 배석해 있는 공개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긴 국정감사에서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는 있지만 국민 앞에 선 국회의원이라면 연필보다 정책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았을까.
장면 둘. 김현지 출석 갈등 속 튀겨진 ‘반반 치킨’
올해 국정감사 최대의 화제 인물은 단연 대통령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석 여부를 두고 여야가 연일 공방을 벌이이면서 김 제1부속실장이 ‘나오냐 마냐’가 국정감사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그러다 지난 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끝내 김 실장 증인 채택이 무산됐다.
야당은 재판·인사 개입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출석을 요구했고 여당은 “스토킹 수준의 집착”이라며 정쟁 의도라고 대응했다. 결국 여야는 길고 긴 평행선을 달리다 기관증인만 채택한 채 회의를 마쳤다.
이 과정에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김 제1부속실장을 국정감사에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하는 안을 언급한 것을 두고 “국정감사가 치킨이냐, 반반 출석하게”라고 맞받아치며 화제를 모았다. 김 의원은 “김 제1부속실장 한 사람 지키려다 이런 코미디가 나온다”고 꼬집었다.
여야는 다음 달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전까지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타결 가능성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내란 연루 의혹에 휩싸인 윤석열 정부 인사들을, 국민의힘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요리 프로그램 출연과 관련해 방송사 대표 등을 각각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도대체 김 제1부속실장이 어떤 인물이길래 여야가 이렇게까지 열렬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지,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았음에도 나타나는 존재감만큼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장면 셋. “꽥꽥이”·“서팔계”...동물의 왕국된 국정감사 현장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정감사에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는 마지막 날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30일 열린 법사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을 향해 “꽥꽥이”라고 지칭하며 “못된 짓은 ‘꽥꽥이’가 제일 많이 하지”라고 했다. 곽 의원의 성씨를 참고해 ‘꽥꽥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곽 의원도 “서팔계”라고 맞받아쳤는데, 이는 서 의원을 ‘저팔계’에 비유한 비하 표현으로 추정된다.
한쪽은 오리, 한쪽은 저팔계를 꺼내 들며 엄숙한 국정감사 현장이 순식간에 동물의 왕국으로 변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서팔계라는 표현을 두고 “한 번 더 하면 퇴장 조치하겠다”고 제지하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왜 서 의원은 봐주느냐”며 응수하면서 2차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야는 한 시민단체가 법사위 국장감사에 최하점인 ‘F 학점’을 준 것에 대한 책임 공방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일환인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재판소원, 법원행정처 폐지 등에 대해서도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결국 이번 법사위 국장감사에서 국민이 본 것은 법과 정의를 논하는 위원들의 품격 있는 토론이 아니라 막말과 고성으로 점철된 유치한 설전뿐이었다.
장면 넷. 유명 베이글 맛집 메뉴엔 ‘노동권’은 없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30일 진행된 고용노동부 종합국정감사에서 유명 베이커리의 20대 직원 과로사 의혹을 계기로 산업재해와 노동자 권리·처우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은 “사망한 직원의 유족에 따르면 최근 주 평균 60시간 이상 근무했다. 유족 주장대로라면 과로사 대상”이라며 “회사는 업무량 급증을 이유로 인력 증원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박홍배 의원도 “사측이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있다”며 “사회 초년생들은 법과 권리를 잘 모른 채 근로계약을 맺고 ‘원래 이런가 보다’ 하며 버티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업체의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2023년 12건, 지난해 29건, 올해 9월 기준 21건으로, 신청된 건수 전체가 모두 승인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하겠다”며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기업 혁신이나 경영 성공 사례처럼 포장하는 문화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과로와 부당한 처우 문제는 단순 사건이 아니라 다시 사회 전반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례가 됐다. 앞으로 노동자 권리 보호가 새 정부에서 어떻게 이뤄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장면 다섯.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한 국정감사 공식 ‘마스크맨’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공식 ‘마스크맨’의 활약이 독보였다. 지난 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황인수 조사1국장이 등장했다. ‘마스크맨’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또다시 마스크를 벗지 않아 퇴장 명령을 받았다.
이날 신정훈 행정안전위원장은 마스크를 벗기를 거부한 황 국장에게 “복면에 가까운 마스크를 쓰고 있어 본인 확인이 어렵다”며 ‘회의장 밖 대기’, 즉 퇴장을 명령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에 이어 올해도 세 번째 같은 이유로 퇴장당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가 “증인 명단에 사진까지 있는데 왜 얼굴을 가리느냐”며 한 목소리를 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국정감사에서 날 선 공방을 벌이던 여야가 황 국장 앞에서는 뜻밖의 ‘단합’을 선보인 셈이다.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는 확실히 있다. 황 국장은 “얼굴이 공개되면 국정원 시절 연관된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후 행안위 의원들은 결국 국회모욕죄 등 혐의로 황 국장을 고발하는 안건을 상정했고 출석 의원 19명 중 15명이 찬성하며 의결됐다.
국정감사장이 정책 검증보다 ‘복면 논쟁’으로 채워진 이날, 가려진 것은 얼굴이 아니라 국정감사의 본래 취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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