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부름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이승택의 영상 작업도 오래 남았다. 불과 연기, 움직임을 다루는 그의 퍼포먼스는 화면 속에서도 강렬했다. 불길이 타올랐다 사라지는 과정은 마치 신이 머물다 떠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기술은 그 장면을 담아내지만, 동시에 그 불안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라짐과 남음의 경계,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기술’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설화나 신화 속 장면이 겹쳐진다. 죽은 자를 부르는 굿, 신이 머무는 산의 제단, 바람이 신의 목소리가 되던 시간. 비엔날레는 그 오래된 이미지를 조명과 기계, 영상으로 새로 쓰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이 북을 치고 불을 피웠다면 이제는 기계가 소리를 내고 화면이 깜빡인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부름과 응답, 그리고 기다림의 구조다.
한국의 도깨비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밤길에 나타나 사람을 이끌었다가 사라지는 푸른 불빛. 귀신의 장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길 잃은 혼을 인도하는 빛이라는 해석도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불빛-스마트폰 화면, 도시의 네온, 인터페이스의 반짝임-도 어쩌면 현대의 도깨비불일지 모른다. 잠시 우리를 미혹시키지만, 그 안에서 방향을 다시 잡게 하는 불빛 말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인간의 본능이었다. 죽은 연인을 찾아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끝내 뒤를 돌아보고 마는 신화 속 이야기처럼 이번 전시의 ‘강령’도 어쩌면 그 욕망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술은 인간의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보내주지만, 동시에 그 욕망의 불안을 더 세밀하게 보여준다.
기술 앞에서 ‘영혼’이라는 단어는 시대착오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의미를 다르게 보여준다. 예전의 영혼이 ‘형체 없는 존재’를 뜻했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지만 작동하는 힘’을 의미한다. 데이터, 전파, 신호, 기억-모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움직인다. 기술은 영혼을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고 있는 셈이다.
결국 강령은 관계의 기술이 아닐까. 누군가를 부르고, 대답을 기다리고, 그 사이 침묵을 견디는 일. 옛날 굿판에서도, 오늘의 전시장에서도 그 구조는 같다. 다만 지금은 북 대신 화면이, 제단 대신 빛의 장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도시의 불빛이 깜빡이고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서로를 부르고, 응답을 기다리고, 잠시의 침묵을 견디는 일 말이다.
어쩌면 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강령의 장(場)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신호가 오가고, 이름이 호출되고, 누군가는 응답한다. 미디어가 신의 자리를 대신한 시대, 그 안에서도 여전히 인간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물음이 멈추지 않는 한, 강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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