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 연극의 해외 진출이 전략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올 10월, 국립극단의 '십이야'가 9년 만에 베이징 중간극장을 가득 채우며 막을 내렸다. 2회 공연 모두 전석 매진, 774명의 중국 관객과 125분 동안 호흡을 나눈 무대는 한국 연극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장이었다.
'십이야'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조선시대로 옮긴 작품이다. 봉산탈춤과 판소리, 팔도 사투리, 랩을 결합한 음악적 구성까지, 한국적 미감이 극대화됐다. 연출 임도완은 “세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유지하면서 한국적 형식을 실험했다”고 밝혔다. 관객이 웃고 울며 몰입하는 순간, 한국 연극의 언어 장벽 극복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무대미술과 조명 또한 공연의 몰입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다. 전통 한옥을 연상시키는 세트와 현대적 미니멀리즘을 조화시켜, 관객은 조선시대의 공간 속에서 현대적 감각을 함께 경험했다. 조명은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극적 긴장을 형성했고, 한국 전통 음악과 랩이 교차되는 순간마다 공간의 리듬을 바꾸며 극적 다이내믹을 완성했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현지화 전략이었다. 배우들은 대사를 중국어와 현지 유머로 변형하고, 일부 장면에서는 즉흥 애드리브를 사용해 관객과 직접 소통했다. 북쇠 역 박경주의 판소리와 랩, 탈춤을 결합한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는 관객을 폭소하게 했고, 향단 역 정다연의 중국어 애드리브는 극적 몰입을 한층 강화했다. 공연 중 웃음과 박수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극적 힘을 증명했다.
이번 베이징 공연은 한국 연극의 해외 전략 모델로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해외 진출의 가장 큰 장벽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였다. 그러나 '십이야'는 아시아권 관객의 공감대와 한국적 정서를 동시에 살리는 전략을 통해 성공적 소통을 보여줬다. 박정희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연극은 인간 본연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기 때문에 언어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배우들의 호흡과 에너지 또한 해외 공연에서 중요한 변수였다. 연기자들은 중국 관객의 반응에 따라 미묘하게 표정과 몸짓을 조정하며 즉각적인 교감을 만들어냈다. 이는 한국 연극이 가진 즉흥성과 현장성을 세계 관객에게 전달하는 핵심 통로가 되었다. 관객의 웃음과 박수는 단순한 반응이 아닌, 한국 연극과 세계 관객 사이의 ‘실시간 소통’의 증표였다.
이번 공연은 과거 해외 공연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한층 발전했다. 2016년 베이징 공연 당시 이미 전석 매진을 기록했지만, 이번 공연은 현지화와 관객과의 즉각적 교감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한국 연극의 세계화’라는 과제를 구체적 현실로 끌어올렸다. 베이징국제청년연극제 주최 측 런위안 비서장은 “한국적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동아시아 문화권과 소통 가능한 작품”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연극이 세계 무대에서 자리 잡기 위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십이야'는 아시아권부터 시작해 유럽, 북미까지 확장 가능한 모델로, 한국적 이야기와 형식을 기반으로 한 창작극의 국제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임도완 연출은 “관객이 자유롭게 웃고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과 중국의 웃음 코드가 맞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은 한국 연극의 미래 전략을 실험한 무대였다. 웃음과 감동을 넘어, 한국 연극은 이제 세계와 본격적으로 대화할 준비를 마쳤다.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담아낸 '십이야'는 한국 연극이 세계 무대에서 가질 수 있는 정체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웃음과 감동을 넘어, 한국 연극은 이제 세계와 본격적으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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