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의 미술과 신화 #9] 돌 위에 남은 손길 - 고대 이집트 미술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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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의 미술과 신화 #9] 돌 위에 남은 손길 - 고대 이집트 미술의 신비

문화매거진 2025-10-31 09:30:03 신고

3줄요약
▲ 기자 고원의 상징적인 장면. 사막의 안개 속에서 스핑크스가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고요히 서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돌의 시선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기자 고원의 상징적인 장면. 사막의 안개 속에서 스핑크스가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고요히 서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돌의 시선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문화매거진=한민광 작가] 이집트의 미술을 떠올리면 우리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신전의 거대한 기둥을 먼저 생각한다. 그 표면에는 수천 년이 지나도 선명한 선과 그림이 남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단순히 예술을 넘어선 ‘이상한 정밀함’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이런 단단한 돌을 그렇게 매끈하게 자르고, 정확하게 맞춰 놓았을까?

기자 고원의 현무암 바닥을 보면 마치 거대한 기계톱으로 자른 듯한 자국이 남아 있다. 곡선으로 이어진 절단면, 깊고 일정한 홈, 그리고 한쪽 끝에서 시작되어 도중에 멈춘 ‘plunge cut(깊게 들어간 절단 자국)’이라 불리는 흔적까지… 이런 자국은 구리 끌이나 돌망치 같은 도구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모양이다. 그 흔적을 처음 발견한 ‘플린더스 페트리(William Matthew Flinders Petrie, 1853.6.3~1942.7.28)’라는 고고학자는 140년 전쯤 이렇게 말했다.

“이건 손으로 만든 게 아니라, 무언가 돌보다 더 단단한 도구로 자른 것 같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기계’라는 단어조차 막 퍼지던 때였다. 그런데 그가 본 돌 위의 선들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 기자 피라미드 앞 신전의 내부 기둥과 외부 바닥 모습. 거대한 화강암과 현무암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으며, 표면은 놀라울 만큼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다. 수천 년 전의 돌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정밀함이 여전히 생생하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기자 피라미드 앞 신전의 내부 기둥과 외부 바닥 모습. 거대한 화강암과 현무암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으며, 표면은 놀라울 만큼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다. 수천 년 전의 돌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정밀함이 여전히 생생하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현무암은 아주 단단한 돌이다. 유리보다 강철보다 단단해서 잘못 다루면 부서져 버린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현무암으로 바닥을 깔고, 벽을 세우고, 거대한 상자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봐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끈하고 정교하다.

그 돌들이 깔린 장소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신전의 입구, 혹은 제단이 있던 자리, 그리고 때로는 피라미드와 연결된 길의 바닥이다. 마치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무언가 중요한 기능을 가진 장소처럼 보인다.

돌의 종류도 흥미롭다. 그들은 한 장소에 여러 재질의 돌을 섞어 썼다. 가장 단단한 현무암과 화강암,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석회암… 이 조합은 마치 서로 다른 성질을 이용하려는 듯했다. 빛을 반사하거나, 열을 저장하거나, 혹은 어떤 진동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사카라의 무덤 내부 벽면을 비추자 빛이 돌 속에서 반사되어 섬세한 무늬를 드러낸다. 수천 년 전 장인의 손이 새긴 별무늬와 문양이 어둠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돌은 침묵하지만, 그 위에 남은 빛은 여전히 말을 걸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카라의 무덤 내부 벽면을 비추자 빛이 돌 속에서 반사되어 섬세한 무늬를 드러낸다. 수천 년 전 장인의 손이 새긴 별무늬와 문양이 어둠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돌은 침묵하지만, 그 위에 남은 빛은 여전히 말을 걸고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고대 이집트 미술의 핵심은 ‘정확함’이다. 벽화든 조각이든, 그들의 작품에는 실수나 흐트러짐이 거의 없다. 그들의 선은 언제나 고요하고, 인체의 비율은 놀라울 만큼 일정하다. 그들은 신을 그리기 위해 예술을 했지만, 그 신을 향한 정확함의 집착은 예술을 넘어서 기술의 수준으로 나아갔다.

이건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확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정밀함이 신에게 다가가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돌 위의 모든 선과 각도에는 믿음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있다. 이런 놀라운 기술이 고대 이집트의 초창기, 즉 ‘고 왕국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기술이 단순해졌다. 후대의 이집트인들은 이전 시대의 돌을 다시 가져다 썼고, 그 정밀한 절단 기술은 사라졌다.

보통 문명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한다. 하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거꾸로였다. 가장 오래된 유적일수록 더 정교했다.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문명처럼 보인다. 그들이 돌을 다루던 방법은 사라졌지만, 그 정밀함을 향한 마음만은 벽화와 기둥, 조각 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마음은 느낄 수 있다.

▲ 사카라 무덤의 벽면에 새겨진 별무늬와 직선 패턴. 정교하게 새겨진 선과 기하학적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늘과 질서를 상징했던 고대 장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시간이 바래도 그 손끝의 정밀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카라 무덤의 벽면에 새겨진 별무늬와 직선 패턴. 정교하게 새겨진 선과 기하학적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늘과 질서를 상징했던 고대 장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시간이 바래도 그 손끝의 정밀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우리는 흔히 이집트 미술을 ‘장식’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에게 미술은 기능이었다. 벽의 그림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사후세계를 향한 문이었고, 신전의 구조는 예배당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을 잇는 장치였다.

현무암 바닥 아래에 숨겨진 ‘돌길’들은 오늘날의 배수로처럼 보이지만, 그 돌들이 너무 귀하고 단단한 재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단순한 배수용은 아닐 수도 있다. 그 안을 흐르던 것은 물이 아니라 에너지나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돌과 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흐름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 사카라의 피라미드로 이어지는 돌길, 이른바 ‘왕의 길’이라 불리는 곳. 햇빛을 머금은 노란 돌길 위로, 고대의 행렬이 지나가던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사카라의 피라미드로 이어지는 돌길, 이른바 ‘왕의 길’이라 불리는 곳. 햇빛을 머금은 노란 돌길 위로, 고대의 행렬이 지나가던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지금의 기술로도 이집트인들이 남긴 절단면을 완벽히 재현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정말로 거대한 기계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떤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비밀의 문명’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늘 기술을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인류는 오래전에도 지금만큼 정밀하고 창의적이었는지 모른다. 돌을 깎는 그들의 손길 속에는 예술가의 감각과 과학자의 계산, 그리고 신앙인의 경건함이 함께 있었다. 그 균형이 바로 고대 이집트 미술의 아름다움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그 돌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손으로 만져보면 부드럽고, 햇빛이 닿으면 마치 숨을 쉬는 듯 반짝인다. 그 안에는 돌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들은 신을 위해 돌을 다듬었지만, 그 돌은 결국 인간 자신을 남겼다. 기술이 사라져도, 예술은 남는다. 그것이 고대 이집트 미술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들의 도구를 모른다. 하지만 그 돌 위에 남은 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진실에 닿게 된다.

그들은 단순히 돌을 자른 것이 아니라, 시간을 새겼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예술로 ‘신’을 찾아가고 있다.

* ‘The Mystery of Ancient Egyptian Stone Cutting in Basalt and Granite - UnchartedX full documentar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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