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최고경영자 서밋(APEC CEO SUMMIT)'에 참석해 의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조금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연설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향해 던진 말이다. 그는 이어 "김 장관은 훌륭한 분이자 아주 까다로운 협상가"라며 한국 정부의 협상력을 공식 인정했다. 유머를 섞어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국 협상 책임자를 공개 석상에서 칭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협상이 양국 모두에게 치열했던 동시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7월 30일 구두 합의 이후 92일간 난항을 겪었던 한미 관세협상이 29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한미 정상회담 직전까지도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국 정상 간 '톱다운' 방식의 결단으로 막판 돌파구가 열렸다. 막후에서는 실무선의 끈질긴 협상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번 협상을 이끈 김 장관 등 한국 쪽 핵심 라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취임한 김 장관은 취임 103일 만인 이날 한미 관세 협상 최종 타결을 이끌었다. 취임 직후부터 매달 미국을 오가며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조율에 매달린 끝에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안을 끌어낸 것이다.
이번 합의로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졌다. 한국은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나머지 1500억 달러는 조선·에너지 협력 프로젝트에 분할 투자하기로 했다. 연간 투자 한도는 200억 달러로 설정해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실리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대미 통상 협상이자, 관세 인하·투자 구조 조정이라는 복합 과제를 동시에 해결한 '100일 협상전'의 결실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장관은 취임 이틀 만인 7월 23일 첫 방미길에 오르며 협상 전면에 나섰다. 당시 미국은 8월 1일부터 '25%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황이었다. 김 장관은 여한구 통상본부장과 함께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이틀 연속 통상협상을 진행한 뒤 귀국도 미룬 채 유럽행 비행기에 올라 추가 협상을 이어갔다.
결국 7월 30일 한미는 구두 합의에 도달했지만, 세부 이행방안과 투자 구조 조정을 놓고 협상이 장기화되며 이후 3개월간의 조율전이 이어졌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현금 투자 비중과 납입 기간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후에도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수차례 미국을 오가며, 화상회의·현장 협의를 병행하는 강도 높은 협상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추석 연휴 기간에도 방미 일정을 소화했다. 협상 막판인 지난 22일에는 귀국 이틀 만에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뉴스1에 따르면 산업부 내부에서는 "취임 100일이 아니라 협상 100일이었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협상은 현금 투자 비중과 납입 기간을 두고 교착이 길어졌지만, 김 장관은 구윤철 경제부총리 등과 외환시장 안정과 상업적 합리성을 내세워 미 측을 설득하며 '연간 투자 한도 명문화'라는 절충안을 관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미 관세협상 세부 합의 결과 브리핑에서 "연간 투자 상한을 설정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했고,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전액 현금 선불'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완화하면서도 한미 협상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국 협상팀에 대해서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모두 협상을 잘했다"면서 "탁월한 협상가들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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