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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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다작

문화매거진 2025-10-30 14:11:08 신고

▲ 가벼운 깃털
▲ 가벼운 깃털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초등학교 때 꽤나 골목대장이었다. 하지만 5학년이 되면서 아버지의 일터가 바뀌는 단순한 이유로 두 번 연속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졸업하게 된 초등학교는 강원도의 한 마을에 있는 분교였다. 전교생이 십의자리에서 끝나는 그런 작은 학교에도 똑똑한 친구, 예쁜 친구, 무서운 친구는 균형을 맞추듯 존재하고 있어 환경적으로 별 다른 생각은 없이 즐겁게 생활하다 졸업을 했던 것 같다.

졸업과 동시에 마을(리)에서 도시(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작은 학교에서 조금은 큰 학교로 전학을 가고, 교복이라는 것을 입게 되는 나이로 진입하는 점에서 큰 변화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부모님도 그 큰 변화가 부담스러웠는지 나를 앉혀놓고 학업에 대한 걱정을 한 아름 늘어놓았다. 

그 시기에는 반 배치고사가 있었고, 중학교 입학을 위해 반 배치고사를 준비해야 했다. 엄마의 걱정에 받아들고 속으로 묵히는 동안 그 걱정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고, 시중에 있는 모든 반 배치고사 문제집을 풀어봐야겠다는 이상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약 8권 정도의 문제집을 풀고 각각 10번은 돌려 봤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에서 하농을 치던 그 폼으로 문제집 앞에 ‘바를 정’자로 표시를 해나가며 문제집을 보고 또 봤다. 반 배치고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걱정과 다르게 꽤 재미있게 중학교도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많이 해보겠다는 그 마음가짐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공부의 양을 시간으로 커버하기 힘들어지면서 무의미한 방식으로 내 안에서 치부되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인생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운 팁이었다.

최근 전시를 계속 진행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전시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나? 어딘가에 걸기 위한, 어딘가에 놓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건가.’

전시장에 놓일 다섯 작업만을 일 년 동안 끌고 가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매일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매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데 나는 왜 일 년에 몇 개의 작업을 앞에 두게 된 것일까.

​나의 고민을 들은 누군가는 ‘다작’이라는 탈출구를 제안했다.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부담 없이 진행하는 다작도 하나의 방법임은 분명했다. 여러 개를 하면 하나는 걸리겠지-가 아닌 부담 없이 많이 하겠다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은 나에게 필요했던 조언처럼 마음속에 찰싹 붙었다. 

이전에도 경험했듯 많이 하는 게 답은 아니겠지만 전시를 위한 작업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또 동시에 전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로 다작을 목표로 두고자 한다. 많이 하겠다는 그 마음가짐을 가져본 게 얼마 만인지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며 문득 아주 먼 옛날까지 빠르게 다녀왔다. 2026년에는 많은 작업들이 나의 두 눈동자에서는 멀어지더라도 크고 작은 곳들에서 더 많은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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