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이재명의 ‘성동격서’...핵잠 건조 승인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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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이재명의 ‘성동격서’...핵잠 건조 승인의 전말

투데이신문 2025-10-30 10:16: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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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오늘의 주요 이슈를 사실-맥락-관점의 세 축으로 풀어드립니다. 음악에서 ‘피처링’은 협업과 도움을 뜻하고, 저널리즘의 Feature는 단순 속보가 아닌 깊이 있는 맥락과 스토리를 다룹니다. 〈뉴스 피처링〉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담아 뉴스의 본질과 함의를 알기 쉽게 풀어내 여러분의 뉴스 생활을 입체적으로 피처링 해드리겠습니다. 내용을 입력하세요.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 2월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 입항하는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폭 10m, 승조원 140여 명이며, 잠수한 채 시속 45㎞ 이상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냈다. [사진제공=뉴시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 2월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 입항하는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폭 10m, 승조원 140여 명이며, 잠수한 채 시속 45㎞ 이상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이번 APEC의 최대 이슈였던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마침내’ 타결됐습니다.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궁화 대훈장은 물론 신라 금관 모형 왕관까지 선물하는 지극 정성을 보인 끝에 이재명 정부가 마침내 미국과의 관세협상 타결을 이뤄냈습니다.

일단 호평이 이어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6월부터 우리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기획재정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국무조정실 등이 8월 1일 상호관세 유예시한을 앞두고 관세 인하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7월 30일 한미 간 관세협상은 ‘1차 타결’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대미 투자금액 3500억 달러라는 수치 외에 구체적인 대미 투자 방식 등은 양국의 ‘동상이몽’ 속에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APEC 전까지 계속 협상 타결에 부정적인 예상을 했고 그 말은 ‘결렬돼도 좋으니 끝까지 버틴다’는 전략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 모처럼 개최되는 APEC에서 ‘삐까뻔쩍’한 결과물을 내고 싶은 것이 우리 정부의 속마음이었겠지만 그런 ‘치장’을 위해 국익을 내팽개칠 수 없다는 사명감이 더 앞섰던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APEC은 APEC이고 협상은 협상’이라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우리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것도 ‘뜻하지 않게’ 한미 관세협상이 너무도 손쉽게(?) 타결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장이 대폭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 수용됐고 무엇보다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주는(최강대국의 시혜 차원에 우리가 감읍해야 할까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향후 한미동맹과 경제안보를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일각에서는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대해 우리가 너무 쫄아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결과론적인 되새김질이 나오기도 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군기잡기’ 식 협상 스타일에 너무 위축돼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내준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은, 국민의힘이 꼬투리 잡을 게 없어서 “통화 스와프가 빠져 외환시장 부담을 자초했다”라는 소심한 비판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을 다시 주목해보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사업가로 살아온 ‘협상의 달인’입니다. 익히 알다시피 그의 협상 스타일은 처음에 상상을 초월하는 무리한 요구를 1차로 지른 뒤 조금씩 그것을 깎아주는,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일종의 ‘은혜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미투자액 3500억달러도 사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애초 감내하기 힘든 수치라는 게 상식으로 통했지만 트럼프가 설치해 놓은 너무도 높은 기준선 때문에 그 투자액이 마치 낮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을 겪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이것도 감지덕지’라는 반응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협상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에게 협상은 ‘타결’을 전제로 한 것이지 판을 깨는 것은 아예 머릿속에 없습니다. 찐 협상가는 10대0으로 이기든 6대4로 이기든, 어쨌든 이문을 남기면 그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그런 속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협상도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것이라고 해석할 때 그는 10대0으로 이길 걸 8대0 정도로 이긴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그런데 이런 노골적이고 고압적인 전략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패권이 뒷배로 작용했기에 통했습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토로한 것처럼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없는 나라는 초강자한테 멱살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힘의 논리가 지배하지만 이제 세계의 외교는 과거의 우아하고 품격있는 협상이 아니라 이번 트럼프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손목 비틀고 찔러서 짜내고, 잔인하고 뻔뻔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에 ‘놀아난’ 감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정부가 끝까지 버티고, 무엇보다 ‘삼전도의 굴욕’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서 그나마 선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 필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 요청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한미정상회담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카드를 하나 꺼냈습니다.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져 북한이나 중국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시면 저희가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 한반도 해역의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새벽에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고 전격 천명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어깨가 으쓱했을 법합니다. 사실 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단순히 엔진 연료를 디젤에서 핵으로 바꾸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를 통해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 내지 보완은 물론이고 미국의 기술 지원 및 연료공급 등이 수반될 필요가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안보와 원자력 기술력까지 업그레이드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서 원자력은 ‘대체할 수 없는’ 에너지원중의 하나입니다. 어쩌면 후세를 위해서도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에너지 정책 전환을 이룬다는 원대한 계획을 진보정권 때마다 추진하고 있지만 에너지 주권국가가 아닌 한국의 현실적 상황 때문에 그 딜레마가 항상 큽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이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받은 것은 그 자체로 원자력 주권국가로 나아가는 중대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가지 ‘골치 아픈’ 안보 아젠다를 요구했었습니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와 핵잠수함 건조였습니다. 미사일 사거리는 어떻게 얻어냈지만 핵잠수함은 끝내 ‘OK’ 사인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내의 강경한 군축주의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 당시에는 핵잠수함 건조 의지를 비공개로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아예 대놓고 ‘핵잠 만들게 해주세요’라고 터프하게 요구한 것입니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축도 90% 이상의 우라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핵 추진 잠수함 연료는 20% 미만의 우라늄을 씁니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우라늄의 농축 자체가 전면 금지돼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동안 미국의 반대로 핵 잠수함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 제한선이 풀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트럼프 대통령, 이 대통령,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사진제공=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트럼프 대통령, 이 대통령,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사진제공=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향후 미국과의 핵잠수함 협상 과정에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문제가 공식 의제로 오른다는 점이 안보 차원에서 긍정적입니다. 한국의 핵연료 자주권 확보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비확산 체제(NPT) 내 긴장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공개적 요구가 동북아 안보질서에서 하나의 ‘나비효과’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핵에너지에 대한 보다 주권적이고 다양한 전략을 추진할 수 있지만 핵잠수함 건조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시샘과 견제가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미 양국이 핵연료 투명성을 강조하는 별도의 협정이나 잠수함 핵연료 관리의 시스템화를 추진하는 등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이번 협상의 또 다른 수확은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따른 에너지 주권의 진일보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기습 제안’은 관세를 때리는 척 하면서 핵잠을 얻어낸 ‘성동격서’ 전략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사실 강대국이 기침하면 우리는 감기가 걸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케 감기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면역을 얻었습니다. 강대국의 압박에 끝까지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경제안보의 자체 면역력을 더 높여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이긴 게 아니라, 강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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