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성평등가족부가 주최한 ‘제1차 성평등 토크콘서트 소다팝’은 청년세대 성별 인식격차 현황 진단을 주제로 진행됐다. 2030세대 청년 21명(남성 11명·여성 10명)은 각자의 일상에서 경험한 성별 불균형 사례를 공유하고 인식 격차의 원인과 해소 방안에 대해 발언했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선한 의지를 갖고 공동체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쓰고자 하는 분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며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보는 시간”이라며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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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라 데스크만 지켜” “남성 육아휴직 유별나다 인식”
우리나라의 ‘젠더갈등’에 대한 인식은 청년 세대에서 유독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리서치의 ‘2025 젠더인식조사’ 결과 20대는 10명 중에 8명, 30대는 10명 중 7명꼴로 젠더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다만 남녀가 인식하는 젠더갈등은 서로 다른 양상이다. 국민통합위원회의 ‘청년층 젠더갈등의 현황 및 분석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남성 징병제 등 병역제도 개선’이, 여성은 ‘성범죄 근절 및 안전 보장’이 개선이 필요한 최우선순위로 꼽혔다.
이날 모인 청년들도 같은 세대가 처한 다른 현실을 지적했다. 30대 여성 김 모씨는 “네트워크 관리사로 취직해 남자 동기들과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시험을 통과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데스크를 지켜야 했다”며 “현장에 못 나가다 보니 도태돼 동기들과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장 모씨는 회사 면접 자리에서 결혼 계획과 남자친구 유무에 관한 질문을 받았던 때를 소개하며 “뉴스에서는 저출생 문제가 많이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경력의 지속성에 관한 검증을 이렇게 하는 데서 괴리감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30대 남성 김 모씨는 “아내보다 내가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어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아이와 관련한 모든 1차 채널이 엄마로 설정돼 있다 보니 내가 유별나 보이는 것 같다”며 “남성 육아휴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의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남성 임 모씨는 “여성이 대부분인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은 힘쓰는 일이나 출장을 도맡곤 했다”며 “남자라는 이유로 사내 복지와 관련된 혜택이 제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남녀의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갈린 사안은 여성 가산점 제도였다. 30대 남성 김 모씨는 “영화계에서는 작가나 감독이 여성이거나 작품의 주인공이 여성일 경우 유의미할 정도의 큰 가산점을 받는데 그런 제도가 진정한 성평등에 기여하는 지 의문”이라며 “행정편의적인 방식이 오히려 여성 창작자로 하여금 가산점이 없었으면 못 왔을 거라는 평가를 듣게 하거나 스스로 검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30대 여성 이모씨는 “영화에서 여성을 그리는 방식을 보면 여성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불필요하게 자세히 묘사되는 등 너무 폭력적인 경우가 여전히 많다”며 “제도가 아직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30대 남성 석 모씨도 “여성의 신선한 시각이 반영된 영화가 많아졌다고 생각해 다양성 측면에서 가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제도를 악용할 때 나오는 부작용을 막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여성 차별은 기성세대 문제…청년 남성이 만든 것 아냐”
청년들은 온라인 환경이 서로 다른 현실을 더 벌려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각자의 경험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20대 남성 이모씨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인터넷을 더 많이 접한 아랫세대는 더 큰 격차가 생기는 것 같아 문제”라며 “요즘 중학교 반장선거에서는 남자는 무조건 남자, 여자는 무조건 여자를 뽑는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젠더갈등에 편승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20대 남성 이 모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래 젠더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며 “젠더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오히려 이를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청년들은 이번 젠더갈등의 본질은 세대갈등이 더 가깝다고 봤다. 30대 남성 김 모씨는 “특히 청년 여성이 느끼는 차별의 문제는 남녀 문제라기보다는 기성세대로부터 받는 폭력”이라며 “청년 남성 입장에서 보면 이게 우리가 만든 구조가 아니고 만들어진 구조에서 함께 커서 어쩌다 서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다 보니 남녀의 간극이 생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직접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공론장이 성평등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실효성 있는 여성 안전 정책 마련 △남성도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 정착 △미디어플랫폼 법안에 성평등 관련 위험평가 항목 도입 등을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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