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늘의 국정감사를 보면 본래의 목적과는 상당히 괴리돼 있다. 피감기관의 연간 사업·성과·정책집행을 점검해야 할 감사가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책 감사보다는 정쟁의 장이 돼 버렸다. 정작 피감기관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자료를 준비했음에도 그 내용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준비한 자료와 무관한 질의가 이어지고 여야 간 공방만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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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준비 과정을 보면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의원실은 국감 전에 피감기관에 대량의 자료 제출을 요청하고 기관은 대개 하드카피나 인쇄본 형태로 의원실별로 제출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 왔다. “요청자료를 트럭으로 실어나른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던 과거의 행태는 인쇄물·하드카피 방식의 자료 제출이 얼마나 과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후 전자파일 형태로 개선했음에도 인적·시간적 부담은 여전히 적지 않다. 지난해 국회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국감에서 피감기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자료 제출 건수는 16만 건에 이르며 의원 1인당 요청 건수도 500건이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자료 요청과 의원의 실제 질의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국감장에서 의원 질의는 피감기관에 요청했던 자료나 정책 관련 내용과는 상관없이 비리나 의혹 중심으로 집중된다. 준비된 자료는 무용지물이 되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심도 있는 검토는 이뤄지지 않은 채 기관장이 질타받고 여야가 충돌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의원들은 제대로 된 정책 국감을 하기보다는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국감 쇼’를 한다는 지적을 받기까지 한다. 국감을 장기간 준비해 온 기관 직원들은 국감장에 나와 온종일 대기하다가 준비한 자료와 무관한 질의가 오가고 기관장이 질타받는 장면만 지켜보다 돌아오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증인 신청 및 채택 과정도 문제다. 많은 증인을 신청한 뒤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수가 조정되는데 증인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만 해도 해당 기관이나 기업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기관들은 로펌이나 컨설팅회사와 자문 계약 등을 맺으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소모한다. 이는 증인 출석이 기관과 개인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방증이다. 증인에서 빠지고자 하는 열망은 일단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면 겪게 될 갖은 수모와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증인을 상대로 무작정 윽박지르듯 몰아세우거나 일방적으로 의원의 주장을 내세워 궁지에 모는 경우도 많아 그 부담은 실로 크다. 2025년 국감에서는 기업인 증인 채택 수가 190명 이상으로 전체 증인의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대부분 증인은 3분도 채 발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국정감사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을 드러냈다. 수십 일간 수백 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감사가 거의 정치 공방으로 소모됐고 경제나 민생 관련 정책 질의는 실종됐다. 최근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인이었음에도 국감장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부동산 보유자나 예비 구매자를 일률적으로 ‘투기 세력’으로 규정하고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태도는 과거 정부의 실책을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경제에는 적이 없고 정부와 시장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감장에서 이러한 정책적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국감이라면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대신 국감을 연중 상임위원회별 상설 감사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가을 국회 국감 일정 중 일부 상임위에서는 하루에 동시에 10개 이상의 기관을 감사하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상당수 기관은 한 차례도 의원 질의를 받지 못한 채 국감을 마쳤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보면 연중 지속적이고 분산된 감독 활동이 일반화해 있으며 단발성 집중 감사보다는 ‘상시적 위원회 감독’ 체계가 중심이다. 이러한 상설 감사 구조는 피감기관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국회의 정책 감시 기능을 강화한다.
또한 국정감사는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의원별 자료 요청을 공동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피감기관의 제출 자료를 전자화·데이터베이스(DB)화해 공공 데이터로 개방해야 한다. 이는 피감기관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강화하며 국감 자료의 재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국회의 본래 책무는 입법, 예산·결산 심의, 그리고 행정부 견제다. 그중 국정감사는 정부 견제의 핵심 도구이자 국민 신뢰의 시험대다. 그러나 예산 심의와 국정감사가 집중되는 가을 국회만 되면 정작 예산과 정책 논의는 실종되고 정쟁만 남는다. 이 같은 정치 공방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논의되지 못한 예산과 정책 감시는 국가 운영의 손실로 남는다. 그래서 국정감사 제도를 없애자는 극단적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처럼 형식과 정치 공방에만 매몰된 국감이라면 차라리 전면적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상설화·디지털화·전문화한 새로운 국정감사 체계를 통해 국회가 본래의 감시와 책임 기능을 회복해야 할 때다. 국정감사 개혁을 통해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나아가 정치의 정상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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