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컬에세이] ‘나비존’, 창덕궁 낙선재에 피어난 꿈의 몸짓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뉴컬에세이] ‘나비존’, 창덕궁 낙선재에 피어난 꿈의 몸짓

뉴스컬처 2025-10-30 00:05: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가을의 궁궐은 유난히 고요하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오래된 목재의 결을 타고 번지는 곳, 창덕궁 낙선재가 다시 한 번 움직임을 품는다. 이번에는 조용한 무용수의 발끝이 그 공간의 시간을 흔든다. 안애순컴퍼니와 이탈리아의 예술기관 파브리카유로파가 함께 만든 현대무용 공연 ‘나비존: The Butterfly Dream’이 바로 그 무대다. 30일과 31일, 오후 4시의 햇살 아래 낙선재는 무대가 되고, 나비의 꿈은 현실로 스며든다.

'나비존' 메인포스터. 사진=안애순컴퍼니
'나비존' 메인포스터. 사진=안애순컴퍼니

안애순은 늘 경계 위에 서온 안무가다. 전통과 현대, 신체와 공간, 인간과 자연의 사이를 유영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왔다. 이탈리아 안무가 듀오 다미아노 O. 비지와 알레산드라 파올레티는 유럽 무용계에서 감각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 다른 미학의 두 세계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그 만남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선 ‘움직임의 대화’가 된다. 낙선재의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빛, 바람의 흐름, 돌계단의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이 안무의 일부로 변한다.

작품은 공간이 춤추는 시간, 건축이 호흡하는 순간에 대한 탐구다. 조선 왕실의 거처였던 낙선재의 마루와 마당, 그리고 그곳을 감싸는 공기가 움직임의 리듬이 된다. 무용수들의 몸은 이 오래된 건축과 대화하며, 궁궐이 품은 시간의 결 속으로 스며든다.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절제된 의상은 신체의 선을 드러내되 공간과 충돌하지 않고, 사운드 디자이너 피정훈의 음악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흔들어 놓는다.

‘나비존’이라는 제목은 장자의 ‘호접지몽’을 떠올리게 한다. 나비가 꿈을 꾸는지, 인간이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는 경계의 순간. 작품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 경계의 흔들림이다. 동양의 철학적 여백과 서양의 구조적 탐구가 창덕궁이라는 역사적 공간 안에서 만나 제3의 언어를 만든다. 어쩌면 공연은 무용이라기보다, 꿈과 현실, 예술과 삶이 서로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안애순은 “서로 다른 언어로 춤을 말하는 예술가들의 대화”라고 표현했다. 공간과 신체가 만나 만들어내는 미세한 떨림 속에서 안애순은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그 떨림이 바로 예술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낙선재의 오래된 나무결처럼, 시간을 초월한 움직임으로 남을 것이다.

‘나비존’은 창덕궁에서의 초연을 마친 뒤, 2026년 피렌체와 베르바니아 등 이탈리아 3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이어간다. 이탈리아의 고건축 속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꿈이 피어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한 나라의 무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함께 꾸는 하나의 ‘공동의 꿈’이다.

낙선재의 마루 위로 가을 햇살이 기울 때, 춤추고 있는 것은 무용수일까, 아니면 공간일까. 어쩌면 그 둘 모두일지도 모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