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한국과 미국이 두 달 넘게 이어진 관세 협상을 29일 전격 타결했다. 총 3500억달러(약 497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 패키지는 현금 2000억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로 구성되며, 현금 투자에는 연간 200억달러의 상한이 설정됐다. 이번 합의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끝난 지 약 3시간 만에 이뤄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경북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며 “3500억달러 투자 중 2000억달러는 현금,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그는 “2000억달러 투자가 일시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도에 따라 집행된다”며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외환시장 안정·조선 협력 병행
양국은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를 한국 기업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1500억달러에는 대출과 보증이 포함되며, 장기 금융을 통한 선박금융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외환시장 부담을 줄인다. 김 실장은 “국내 조선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선박 수주 가능성도 높였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은 협정 이행을 위한 투자위원회와 협의위원회를 공동 설치하기로 했다. 미국 상무장관이 투자위원장을,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협의위원장을 맡아 프로젝트를 공동 선정한다.
◇관세 인하, 車·반도체·의약품 중심
자동차 및 부품 관세는 기존 25%에서 15%로 인하됐다. 반도체는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조정됐고, 의약품과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 항공기 부품, 제네릭 의약품, 미국 내 미생산 천연자원은 무관세 품목에 포함됐다.
김 실장은 “우리 주요 수출 품목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품목별 관세율을 조정했다”며 “FTA 기준을 충족하면 상호 관세는 15% 이하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관세 인하는 한미 양해각서(MOU)를 이행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첫날부터 적용된다. 이르면 11월 중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투자금 회수·리스크 관리 장치 마련
김 실장은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도록 MOU에 명시했다”며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가 수익을 5대5로 배분하되, 한국이 20년 내 전액 회수하지 못할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연간 조달 한도를 설정해 특정 프로젝트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프로젝트 수익으로 보전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특수목적법인(SPV) 형태를 도입해 위험을 분산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투자 방향을 바꿀 경우 재협의 절차를 보장하는 안전장치도 마련됐다.
그는 “연도별 투자 한도 설정으로 외환시장 불안을 사전에 차단했다”며 “정부 보증채 발행을 통해 해외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므로 국내 외환시장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계 “시장 불확실성 해소·진출 기회 확대”
이번 협상으로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진출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사업 추진 시 한국이 추천하는 기업을 우선 선정하고, 한국인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하기로 했다. 또한 사업 추진에 필요한 토지 임대, 용수·전력 공급,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기로 약속했다.
김 실장은 “우리 기업들이 미국 제조업 재건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미 투자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넓히고 양국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농축수산물 시장 개방은 철저히 방어됐다. 그는 “쌀, 쇠고기 등 주요 농산물의 추가 개방은 없으며, 검역 절차 협력 강화 수준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통화스와프는 무산…“한도 설정으로 대체”
다만 통화스와프 체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김 실장은 “미국이 연간 한도 없이 3500억달러 현금 투자를 요구하던 단계에서 외환시장 부담이 불가하다고 판단해 한도 설정을 제안했다”며 “상호 이해가 높아지며 스와프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정부 보증채 형태로 해외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라며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맹 현대화·산업 협력 심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며 “북한의 핵잠수함 건조 등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능력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방향성에 합의가 이뤄졌으며, 구체화를 위한 실무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어려운 협상 끝에 관세 인하와 투자 한도 조정이 타결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관세 영향 최소화를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고, 품질·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으로 내실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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