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베팅?
'핵 비확산' 질서에 도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 개막과 함께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이재명(61) 대통령은 트럼프(79) 미 대통령에게 "우리도 방위비를 증액할테니,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도록 결단해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요청하며 국제 외교 무대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최고 지도자에게 핵추진 무기체계 도입을 위한 연료 공급이라는, 극도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승인을 요구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이 요청의 핵심은 단순한 첨단 군사 장비 도입을 넘어, 한국이 북한의 고도화된 수중 위협에 대응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미 동맹 내에서 전략적 위상을 격상하며, 핵 주권 확대를 모색하려는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갬빗(Strategic Gambit)'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략적 갬빗이란 체스 용어로 일시적으로 자신의 기물(말이나 폰)을 일부 희생해, 이후에 더 유리한 포지션이나 이점을 얻으려는 '의도적인 오프닝 전략'을 뜻한다. 한마디로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고 장기적 이익을 노리는 전략적 행위다.
핵추진잠수함(SSN) 연료 공급의 허용은 한국에 군사적 생존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제 핵 비확산 질서에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다차원적인 전략적 승인을 의미한다.
무제한 잠항 능력 '수중 킬 체인'
디젤 잠수함의 한계 극복에 필수
핵잠수함 연료 공급 허용이 가져올 가장 직접적이고 필수적인 의미는 한국 해군의 전략적 잠항 능력 혁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건조할 잠수함이 핵무기를 적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원자력 추진 기관 연료만을 요청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기존의 디젤 잠수함(SS)은 배터리 충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근처로 부상해야 하므로 작전 수행 기간이 며칠 또는 몇 주로 제한된다. 이런 근본적인 취약점은 북한이나 중국 잠수함들의 은밀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감시하는 대잠수함전(ASW)에 심각한 제약을 초래한다.
반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 공급 허용은 한국 해군에 연료 교체 시기(보통 수십 년)까지 사실상 무제한의 잠항 능력을 가능케 한다. 이는 북한이 5,000~10,000톤급 전략핵잠수함(SSBN) 개발을 가속화하며 한국과 한미 동맹에 가하는 전략적 위협에 대응하는 수중 킬 체인(Kill Chain)의 핵심 요소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연료 공급 허용은 곧 한국이 역내 수중 안보 환경의 '게임 체인저'로서 역할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군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외교적 의미: 동맹 내 '전략적 공여자' 지위 확보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트럼프에 '결단'을 요구한 것은 미 행정부의 '거래 중심(Deal-making)' 외교 스타일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 기조를 정면으로 공략하는 고도의 전략적 움직임이었다.
핵심 의미 1: 미국의 방위 부담 경감에 기여
핵잠수함 연료 공급 허용의 가장 큰 외교적 의미는 한국이 동맹 내에서 단순한 안보 수혜자가 아닌 '안보 공여자(Security Provider)'로 위상을 격상시킨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SSN을 확보해 동해와 서해의 해역 방어 활동을 전담하게 되면 "미군의 부담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논리는 미국의 조선업 쇠퇴와 서태평양 핵잠수함 전력 공백 우려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동맹의 방위 부담 경감'이라는 이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핵심 의미 2: AUKUS 선례 통한 핵 비확산 원칙 유연화
이는 오커스(AUKUS) 안보 동맹의 선례를 한국에 적용받으려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승인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 미국과 영국은 비핵보유국인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결정하며 국제 핵 비확산 질서에 대한 예외를 줬다. 따라서 한국은 AUKUS 선례를 지렛대로 삼아, 북한의 임박한 핵 위협에 직면한 최전선 동맹국인 한국에게도 유사한 전략적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이를 수용한다면, 이는 지정학적 긴급성에 따라 '핵 비확산 원칙'이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국제사회에 재확인하고, 동맹 내에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도를 대폭 격상시키는 상징이 되는 셈이다.
법률적으로 핵 주권 확장과 '패키지 딜' 완성
한미 원자력 협정의 재해석 및 핵 주권 진전
핵 연료 공급 허용이 한국에 가져올 가장 깊은 전략적 함의는 바로 핵 주권의 실질적 확장이다.
현재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핵연료의 군사적 목적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한국은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만 생산할 수 있고 이마저도 군사적 사용은 금지돼 있다. 따라서 핵잠수함 연료 공급 허용은 이 협정의 해석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거나, 적어도 핵연료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원칙을 허무는 행정적 결단을 의미한다. 이는 SSN 도입을 장기 숙원이었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 협상과 연계하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패키지 딜' 전략을 완성하는 핵심 고리다.
저농축 우라늄 사용으로
핵확산 우려 동시에 해소
한국이 요구한 연료가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높은 고농축 우라늄(HEU, 40% 이상)이 아닌, 핵무기 전용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트럼프와 협상 테이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국이 프랑스의 선례 를 따라 국제사회의 핵무기 개발 의심을 최소화하면서도, SSN의 무제한 잠항 능력을 확보하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타협책이다. 미국이 저농축우라늄(LEU) 공급을 승인한다면, 이는 한국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의 비핵보유국으로서 핵무기 개발 의도를 배제하고 순수한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에 나섰음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의미를 지닌다.
현재 핵잠수함을 보유,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인도 등 6개국 뿐이다. 여기에 오커스(AUKUS) 안보 동맹을 맺은 호주가 추가로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해군력이 강한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추진중이다.
이에앞서 문재인 정부도 2020년에 미국 측에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 필요성과 계획을 설명하고 이를 위한 핵연료(저농축우라늄)를 공급받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자국의 핵 비확산 원칙을 내세워 우리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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