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에 대한 재계 안팎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확하게는 현대그룹 후계자로서 중견기업 규모로 전락한 사세 회복과 과거 현대차그룹에 내준 현대家 적통의 자존심을 되찾아 올만한 역량을 지녔는지에 대한 관심이다. 정 전무는 모친에 이어 현대그룹 최상단의 지배회사인 현대홀딩스컴퍼니의 2대주주(7.89%)에 올라있다. 동시에 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과 관련 깊은 현대무벡스의 아시아지역총괄을 맡고 있다.
정주영 후계자, 며느리 경영 이어 딸 시대 개막…미래 먹거리 계열사 캐시카우 사업 주도
현대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적통을 잇는 유일한 기업이다. 정 창업주는 살아 생전 자신의 후계자로 5남인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을 지목하고 현대그룹의 사명과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의 굵직한 기업들을 물려줬다. 그러나 2003년 고 정 전 회장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면서 아내인 현 회장이 급작스럽게 회장직을 물려받고 이후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주력 계열사를 줄줄이 매각하면서 사세가 크게 꺾였다. 지금은 사실상 현대엘리베이터를 유일한 캐시카우로 하는 중견그룹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다.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는 1977년생으로 현 회장과 고(故) 정 전 회장의 장녀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4년 현대상선(현 HMM) 평사원으로 입사했고 이후 현대그룹 계열사를 오가며 여러 직책을 거쳤다. 현재는 2018년 현대엘리베이터 물류자동화사업부문이 분사되면서 독자 기업으로 거듭난 현대무벡스 아시아지역총괄(전무)을 맡고 있다. '현대무벡스'는 승강장 스크린도어 등 물류자동화사업이 주력인 기업으로 최근에는 핵심 자동화 로봇 개발·생산 등 스마트 물류 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하는 '2024년도 소재·부품 기술개발 지원사업' 공모에서 '고정밀 대형 자율이동로봇 플랫폼 설계 및 통합 구동 모듈 실증' 과제의 주관사로 선정되며 자율주행모바일로봇(AMR)과 무인이송로봇(AGV) 개발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덕분에 실적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3%, 6.8% 증가한 1766억원, 96억원 등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지난 2023년 3분기 이후 8분기 연속 흑자이며 매출액 역시 지난해 1분기부터 매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이다.
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초 3400원대에 거래되던 주가는 어느새 1만원을 돌파한 상태다. 지난달 15일에는 2년 5개월 만에 상한가(+29.97%)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자동화·무인화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주가 상승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최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계기로 기업들이 노조 리스크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무인화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현대무벡스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한투자증권은 "로보틱스 섹터에서 성장성과 밸류에이션을 동시에 갖춘 드문 기업이다"며 "노동비용 상승 구조 속에서 로봇 투자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발주가 본격화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정 전무가 맡고 있는 아시아지역총괄 직책 또한 상당히 무게감 있는 자리로 평가되고 있다. 아시아지역총괄은 싱가포르, 중국, 베트남 법인을 산하에 두고 지역 내 사업 전략과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무벡스에 있어 아시아 지역은 사세 확장을 위한 핵심 공략 지역 중 한곳이다. 현대무벡스의 202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물류자동화 부문 수출은 881억원으로 전년(190억원) 대비 360% 이상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의 올해 전자상거래 예상거래액은 878억달러(원화 약 126조원)로 연평균 3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母 현정은 이어 지주사 2대주주 지위, 후계자 입지 강화 카드로 재단 네트워크 활용
정 전무는 그룹 내 역할 뿐 아니라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현대그룹은 현대홀딩스컴퍼니가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정 전무는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7.89%를 보유하고 있다. 모친 현정은 회장(61.6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지분율이다. 정 전무는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인 현대네트워크의 지분도 7.89% 보유하고 있다. 현대네트워크는 현 회장과 자녀들이 지분을 나눠 가진 개인 회사로 현 회장이 91.3%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밖에 정 전무는 현대엘리베이터(0.4%), 현대무벡스(4.0%)의 지분도 직접 확보 중이다.
정 전무는 그룹 내 역할·지배구조 외에도 현 회장의 네트워크도 서서히 물려받고 있다. 정 전무에 대한 네트워크 승계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곳은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임당장학문화재단'이다. 정 전무의 외할머니인 고(故) 김문희 이사장이 설립한 임당장학문화재단은 우수인재 양성을 위해 학술연구비 지원사업과 장학금 사업등 교육 지원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공익단체다. 현 회장은 직접 이사장을 역임하다 2018년 정 전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임당문화재단은 이화여자대학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수년째 꾸준히 이화여대에 기부를 하고 있다. 현 회장(1955년생)은 이화여대 학사·석사 출신으로 2013년 '자랑스러운 이화인'에 선정된 바 있다. 현 회장은 사립 교육재단인 이화학당의 이사로 직접 재직 중이기도 하다. 지난달 이화학당의 신임 이사장에 선임된 김은미(1958년생) 전 이화여대 총장 역시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이다. 이 외에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장관, 박영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한국 첫 여성 재판관인 전효숙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도 모두 이화학당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임당장학문화재단은 최근 교육 지원 사업뿐만 아니라 의료 지원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억원 규모의 '임당의학장학금' 기부를 비롯해 올해 초에는 정 전무가 이재협 전 서울대 의과대학 학과장이 병원장으로 있는 보라매병원을 직접 찾아 3000만원 규모의 병원발전기금을 기부했다. 당시 정 전무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병원의 사회공헌활동에 임당장학문화재단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현재 임당문화재단에는 정 전무와 함께 이사 4인이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정 전무를 제외한 4명의 이사진에는 ▲최인영(1954년생) ▲김재원(1977년생) ▲오윤정(1977년생) ▲이주연(1979년생)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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