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눈 속에 들어간 작은 전자칩이, 다시 세상을 보게 했다. 황반변성으로 중심시야를 잃은 환자가 '눈 속 칩'과 '스마트 안경'의 도움으로 글자를 읽고, 사물을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놀라운 성과는 실리콘밸리 신경공학 스타트업 사이언스 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이 개발한 시각 복원 장치 'PRIMA BCI'를 통해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렸다.
◆ 눈 안의 미세 칩, 잃어버린 중심시야를 다시 켜다
PRIMA BCI는 망막 한가운데, 머리카락보다 얇은 전자칩을 이식하는 방식이다. 이 칩은 외부 안경(스마트 글래스)에 장착된 카메라로부터 이미지를 받아, 그 정보를 전기 신호로 바꿔 망막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손상된 황반을 대신해 뇌로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인공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칩의 지름은 2mm, 두께는 30μm(머리카락 절반 이하). 그 안에 378개의 전극이 들어 있으며, 마치 눈 속에 들어간 미세한 카메라처럼 작동한다.
연구팀은 중심시야가 손상된 황반변성(AMD) 환자 5명을 대상으로 한쪽 눈에 칩을 이식하고, 스마트 글래스로 시각 신호를 송출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처음 환자들이 본 것은 단순한 흑백의 빛무늬였다. 하지만 몇 주 뒤, 그들은 글자와 윤곽선을 구분하고, 화면 속 사물의 방향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참가자는 책의 글자를 읽고, 방 안의 물체 위치를 식별할 정도로 중심시야가 회복됐다.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은 "손상된 중심부만 보완하기 때문에, 기존 인공망막보다 훨씬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주변시야는 그대로 두고 중심부 시각 정보만 복원해, 뇌가 더 쉽게 통합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 시각을 복원하는 '뇌-눈 인터페이스'
PRIMA BCI는 단순한 인공눈이 아니라, 뇌와 눈을 직접 잇는 신경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스마트 글래스에는 초고속 카메라와 영상처리칩이 들어 있어, 눈앞의 장면을 실시간으로 해석한 뒤 그 데이터를 눈 속 칩으로 전송한다.
칩은 이 정보를 전기 신호로 바꿔 망막 신경을 자극하고, 그 신호가 뇌의 시각피질에 도달해 '보는 경험'을 만든다.
연구팀은 "PRIMA는 손상된 시각 회로를 우회해, 신경계의 연결 자체를 복원하려는 시도"라며 "시력 보조를 넘어 신경 재활의 새 장을 열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PRIMA는 인간의 감각을 전자적으로 복원한 최초의 실용 시스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황반변성뿐 아니라 시신경 손상과 망막색소변성 등 다양한 시각장애 치료로 기술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며, 2026년 다기관 2상 임상시험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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