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 위에 새긴 세월과 예술을 복원하며 평생을 걸어왔습니다.”
손영학씨(77)는 올해로 45년째 전통 목판 문화재 복원에 매달려온 장인이다. 오랜 세월 그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목판문화를 되살리는 일에 일생을 바쳐 왔다.
교직생활을 하던 1970년대, 학생들을 인솔해 간 광릉수목원에서 우연히 본 한 작품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나무에 새겨진 정교한 글씨와 그 속에 담긴 정신은 당시 교사였던 그의 가슴을 강하게 울렸다. 이후 작품의 주인공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철제 오옥진 선생인 것을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인사동으로 찾아가 제자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문화재 복원의 길에 들어섰다.
손씨는 목판을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한 시대의 정신과 언어를 담은 문화유산으로 여겼다. 특히 조선시대 한글 목판 문학이 6·25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잃어버린 목판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춘향전, 홍길동전, 심청전 등 대표적인 한글 목판 문학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은 수십년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 결과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09년 국무총리상, 2012년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국내 문화재 복원 분야의 대표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천자문과 훈민정음 해례본 등 다양한 목판 복원 작업도 이어가며 목판 예술의 정수를 현대에 되살리고 있다.
그의 노력은 개인의 예술 활동을 넘어 우리 전통 문화의 맥을 잇는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저는 ‘서각(書刻)’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본식 표현이에요. 우리의 전통 용어는 ‘각자(刻字)’입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손씨는 기술뿐 아니라 언어의 순수성까지 지켜내려 애썼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조선 장인의 혼과 한글의 미학이 녹아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8일 경기도가 주최한 ‘제8회 경기도민의 날’에서 문화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현재 두 명의 제자를 키우며 기술 전수에도 힘쓰고 있다. “지방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목표예요. 제가 그런 자격을 갖춰야 제자들의 길이 열리죠.” 나이를 잊은 그의 열정은 후대에게 전통을 잇게 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내년 5월 완성을 목표로 6년째 이어온 대작 작업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긴 세월을 버텨온 그의 손끝에는 여전히 목판을 새기는 날카로운 집중력이 남아 있다.
손씨는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 전통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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