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라 소짜니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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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 소짜니와의 대화

더 네이버 2025-10-29 11:31:29 신고

Carla Sozzani in her office.

Fondazione Sozzani(폰다치오네 소짜니)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몸담고 있는 ‘소짜니 재단’은 지식과 교육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제가 살아오며 가장 중요하게 느낀 것, 배운 것, 실수로부터 얻은 깨달음까지도 다음 세대와 나누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진과 패션 분야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지식과 교육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서, 경험을 공유하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죠.
그리고 이 여정에는 아트 디렉션을 맡고 있는 크리스 루스(Kris Ruh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소짜니 마이노(Sara Sozzani Maino)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크리스(Kris)는 폰다치오네 소짜니에 자리 잡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매일 멈추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생성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고, 시각적 언어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고, 제 딸 사라는 새로운 세대의 창의적인 인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 모든 활동은 하나의 원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그 중심에는 ‘공유’와 ‘책임’,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열린 시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폰다치오네 소짜니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폰다치오네 소짜니는 패션과 사진, 아트, 디자인 등 거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으며, 수많은 서적과 자료를 도서관처럼 정리해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습니다. 더 넓은 지식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죠. 저희는 사진과 패션을 주제로 한두 개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실제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를 이끌 창의적인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가 조화를 이루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요? 저는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다 연결됐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제가 진정으로 관심 있는 일, 그리고 제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그 여정에서 저는 늘 제 시선과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죠. 그게 결국 일관성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게 보일 수는 없고,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자신만의 일관성을 잊지 않되, 타인의 의견과 시선에도 귀 기울이는 성실한 관심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무언가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나아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자신 안에 흐르는 하나의 생각, 즉 철학을 잊지 않는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 Archives and Kris Ruhs Studio.


오늘날 하나의 표현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언어와 분야를 아우르는 문화 공간이 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세상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문화기관이 단일한 예술 형식에만 집중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진이나 패션 같은 특정 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도 종종 그와 관련된 다른 표현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죠. 다양한 예술 형식이 서로 연결되고 어우러질 때,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기관이 특정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두세 가지 이상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보다 완전하고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폰다치오네 소짜니 안에서 패션은 어떻게 예술 및 문화적 사유와 연결되나요? 패션은 제가 처음 시작한 일이었고, 제 인생 전체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해왔습니다. 다행히 저는 전형적인 ‘Fashion Victim’은 아니었기에 패션을 단순히 입기 위한 것이나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죠. 오히려 사회 변화의 표현 방식이자, 아름다움과 미적 감각의 한 형태로 패션을 마주했습니다. 그러한 시선을 기반으로 지금 재단 안에서 제가 보유한 의상 컬렉션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 그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담은 것들, 때로는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간직했던 것들 등 다양한 시각으로 컬렉팅되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을 젊은 세대에게 제공하고, 그들이 실제로 옷을 만지고, 보고, 연구할 기회를 갖게 했죠. 
주변을 둘러보면, 요즘은 심지어 최고 수준의 패션 학교조차 제대로 된 아카이브가 없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젊은이나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뮤지엄으로 달려가지만 그곳에 전시된 것들을 실제로 만져볼 기회는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를 사거나 빌려 입게 되죠, 직접 옷을 보고, 만지고, 느껴야 하니까요. 실제 옷을 연구하고, 질 좋은 옷의 기능과 구조를 직접 보고 만져가며 새롭게 해석하고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각 아카이브에 담긴 시대상과 철학, 스토리를 더해 패션이 단순히 입고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전달하며 패션과 시대 그리고 문화 등의 연결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1 F&B and Events Overview. Entry-Courtyard Garden. 3 Bar-Cafe-Lounge. 


빠르게 시각적으로만 소비되는 시대에, 문화 콘텐츠의 깊이는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나요?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사실 그 속에서 우리가 AI, 인터넷, SNS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변화는 굉장히 최근 일이에요. 우리가 구글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1998년쯤이니까, 아직 30년도 채 안 된 거죠. 이런 도구들은 어디까지나 ‘서비스’일 뿐이에요. 무언가가 궁금할 때 빠르게 검색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물론 편리합니다. 하지만 그걸 ‘문화’라고 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정보를 빠르게 배우는 동시에, 빠르게 잊어버리거든요. 머릿속에 쌓이지 않고, 나 자신 일부가 되지도 않아요. 그로부터 더 깊은 생각이나 배움이 이어지지 않는 거죠. 지나치게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다 보면, 마치 어디론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정작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잊어버리는 상태가 돼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책, 종이로 인쇄된 글, 사람들 사이의 대화, 손으로 쓰는 글 같은 것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어떤 미술관 관장과 이야기했는데, 그분도 요즘은 글을 손으로 쓰려고 노력한다고 하더군요.전부 컴퓨터로만 쓰다 보면, 언젠간 우리가 더 이상 ‘글을 쓰는 법’ 자체를 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이것도 제가 도서관을 열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90년대에 슬로푸드 운동이 있었던 것처럼, 저는 10 Corso Como를 통해 ‘슬로 쇼핑’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어요. 벌써 35년이 지났네요. 지금 이 시대의 ‘속도 문제’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인터넷이라는 도구 때문에 더 심각해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잠시 멈추고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전시나 프로젝트 중, 이처럼 다학제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많은 전시를 해서 하나만 꼽기는 조금 어렵지만, 아마도 제게 가장 큰 만족을 준 전시들은 사진 전시였던 것 같아요. 단순히 벽에 사진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 요소를 함께 첨부하여 관람객이 ‘보는 것’을 넘어서 잠시 멈춰 서서 문서를 읽거나 사유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경우가 많았죠. 또 아주 기억에 남는 전시 중 하나는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Fondazione Azzedine Alaïa)에서 진행한 두 명의 예술가를 함께 구성한 전시입니다. 두 예술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유가 깊어지고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죠.지금까지 300개가 넘는 전시를 했기 때문에… 하나만 고르기는 참 어렵네요.

1, 2 Florania Presentation at Fondazione Sozzani, September 2025 photo by Giusy De Ceglia. 3 Galleries. 


서로 다른 시대, 스타일, 언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때 당신만의 큐레이션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요? 우선 가장 중요한 건 기본 아이디어예요. 어떤 아이디어에 마음이 끌리면, 그 아이디어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공부를 시작하죠. 자료를 찾고, 조사하고, 문서를 참고하면서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다음에는 리서치 계획을 짜요.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스스로에게 일종의 체계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하지만 큐레이션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어요.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들다 보면 거기서 또 다른 것들이 계속해서 나와요.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다고 할까요? 끝이 없죠. 리서치하면서 발견하는 새로운 정보는 언제나 저를 깊이 빠져들게 합니다.
그렇게 놀랍도록 많은 새로운 정보가 그 안에서 쌓이게 되죠. 하지만  언젠가는 멈춰야 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반드시 집중해서 파고들어야 해요. 이게 특히 책을 만들 때 큰 문제가 되곤 해요. 처음엔 100페이지짜리 책을 만들려고 시작했는데, 나중엔 1만 페이지가 되어버리죠. 멈추지를 못하거든요(웃음).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그 주제와 사랑에 빠지는 것, 그리고 그것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또 다른 지식을 얻는 것만큼 스릴 넘치는 일이 있을까요? 발견의 긴 여정을 접고 되돌아와 더 풍성해진 주제 앞에서 느끼는 벅찬 희열 또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죠?


패션을 단순한 창조 산업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표현으로 어떻게 풀어내나요? 예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패션을 예술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통해 전달하려고 해요. 2007년에 진행했던 <Maison Martin Margiela Collezione Artisanal> 라인 전시, 2017년 피에르 가르뎅의 <Les Sculptures Utilitaires> 전시, 그리고 제가 정말 좋아했던 2005년 잔드라 로즈의 <Una Retrospettiva>나, 2002년 파코 라반 같은 디자이너들의 전시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전시들은 단순히 예쁜 옷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디자이너들을 다시 발견하거나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될 수 있거든요.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잖아요. 1999년에 전시한 쿠레주(Courrèges) 같은 디자이너도 그런 경우 중 하나죠. 또 마르지엘라 같은 천재적인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건 정말 특권입니다. 그건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전달 과정이니까요. 옷이 단지 ‘입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쁜 옷을 사고 입는 것도 좋지만, 옷을 살 때는 왜 사는지, 그 옷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와 영감을 주는지 그런 걸 느끼는 게 더 중요하죠.

1,2,3,4 Maison Martin Margiela, Pierre Cardin, Zandra Rhodes, Paco Rabanne. Courtesy Fondazione Sozzani


대중이 패션을 회화나 사진처럼 동등한 예술 언어로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나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같은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그런 구분은 사실 상업적인 미술 갤러리들이 만들어낸 편견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회화나 조각만을 ‘진짜 예술’이라고 여기고, 사진은 예술성이 덜하다, 패션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사실, 저는 장인이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정한 예술가는 장인 정신을 갖춘 사람, 즉 기술과 창의성을 겸비한 사람이죠. 모든 미적 표현의 형태는 다 예술이에요. 바우하우스 시절,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도 이런 말을 했죠. “예술가는 누구인가?”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예술가는 고양되고 숙련된 장인이다.”


다가오는 2026년, 준비 중인 프로젝트나 계획 중인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2026년에는 현재 제 딸 사라와 함께 진행 중인 교육 프로젝트를 더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요즘 그 일이 굉장히 흥미롭고 보람도 크기에 앞으로 패션을 중심으로 한 교육 콘텐츠를 더 넓은 층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에게 아주 특별한 전시가 하나 예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수집해온 의상 컬렉션과 아티스트 크리스 루스의 작품을 서로 대화하듯 설치하여 큐레이션할 예정이며, SCAD Museum에서 2026년 9월 26일 오픈할 계획입니다.   

courtesy of Fondazione Sozz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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