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 빙벽이 점 점 더 없어지고 있다
빙하가 녹을 때, 화산이 깨어난다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예상치 못한 위험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서(西)남극 빙하 아래 묻혀 있던 수십 개의 화산이 ‘활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수천 미터 두께의 얼음이 사라지면, 그동안 압력에 눌려 있던 마그마가 솟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칠레 남단의 파타고니아 지역과 남극 사이에 형성된 지각 구조대에서는 이미 이러한 변화가 관측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표면의 온도 변동과 미세 진동이 포착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를 “빙하 해빙에 따른 압력 해소의 결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화산활동은 또 다른 온실가스 방출과 대기 중 입자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즉, 빙하 해빙이 화산활성을 자극하고 다시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는 남극이 단순한 얼음 대륙이 아니라, 지구 기후시스템의 복잡한 톱니바퀴임을 보여준다.
▲ 칠레는 거의 고산지대로 이뤄지고 있고 여러 기후대가 존재하고 있다
안데스의 눈물 — 칠레의 물안보 위기
칠레는 지구상에서 남극과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다. 그만큼 남극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칠레 가톨릭대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전 세계 평균보다 약 35%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연간 약 0.7m씩 줄어드는 빙하는 단순한 눈의 손실이 아니라, 국가의 물탱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칠레의 주요 농업지대는 안데스의 빙하수가 녹아 흘러내린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속도는 그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여름철에는 폭우와 홍수, 겨울철에는 가뭄과 저수량 부족이 교차하며, 농업생산성과 식수 공급 모두 위협받고 있다.
한 칠레 기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남극의 변화가 칠레 수도권의 수도꼭지에 직접 연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제로 칠레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수자원 비상계획’을 수립했으며, 남극과 안데스의 해빙 속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위성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붉은 눈이 덮은 대륙 — 알베도의 붕괴
▲ 미세조류가 눈 위에서 번식하면서 붉은 색소를 내뿜기 때문이다.
남극의 눈이 붉게 물들고 있다.
최근 연구진은 남극 해안 지역에서 핑크 스노우(Pink Snow) 현상이 확산되고 있음을 관측했다.
이는 미세조류가 눈 위에서 번식하면서 붉은 색소를 내뿜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단순한 색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얀 눈은 햇빛을 반사해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지만, 붉게 변한 눈은 더 많은 열을 흡수한다.
결과적으로 지표 온도가 상승하고, 해빙이 더 빨라지는 알베도(반사율) 저하가 발생한다.
이 조류는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과 영양염류 유입에 따라 폭발적으로 번식한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온난화가 남극의 생태를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악순환 구조다.
한 생태학자는 “남극의 붉은 눈은 지구가 보내는 마지막 신호탄”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처럼, 눈의 색이 변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경고등이자, 지구 알베도의 붕괴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바다 속의 경고 — 남극 해양 생태계의 변이
남극의 변화는 바다 아래에서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남극 연안의 해저에서는 유기탄소 입자 침강의 패턴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보통 가을에는 해양 플랑크톤이 줄면서 입자 흐름이 감소해야 하지만, 남극 해역에서는 오히려 가을철에 유기물 흐름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해빙 시기와 해류 패턴이 바뀌면서 해양생태계의 순환이 왜곡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런 변화는 남극 인근의 물고기, 조류, 해양포유류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칠레 연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특히 남극에서 유입되는 냉수 해류가 약화되면서, 칠레 북부 해안의 어족 분포가 바뀌고 있다.
한 해양학자는 이를 “남극과 칠레 바다가 한몸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극의 바람이 바뀌면 칠레의 파도가 변한다.
이제 바다는 단지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기후를 매개로 연결된 생명 순환의 통로가 되고 있다.
▲ 1981년에서 2007년 사이의 남극 표면 빙층 온도 추세는 일련의 NOAA 위성 센서에 의한 열적외선 관측을 기반으로 합니다.
남극과 칠레, 기후안보의 최전선
칠레는 지구 남단의 기후감시 초소로 불린다.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세 차례 남극을 방문하며, 환경·지정학·기후정책의 삼중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남극을 지키는 것은 곧 칠레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는 현재 남극 연구소를 중심으로 남극의 해빙, 해류, 생태계 변화를 실시간 관측 중이다.
이는 단순한 과학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남극이 녹으면 해수면 상승이 가속화되고, 이는 칠레의 4,000km 해안선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칠레 환경부는 올해부터 기후안보 보고서를 발간하며, 남극 변화와 국내 피해 간의 상관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그 보고서에는 “남극의 기온이 1도 오를 때, 칠레 북부 사막의 수자원은 12% 감소한다”는 분석이 담겼다.
이는 남극이 더 이상 먼 대륙이 아니라, 칠레의 내일을 비추는 거울임을 보여준다.
▲ 장보고 과학기지가 완공되기까지의 전 과정과 기지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남극의 원시 자연을 담은 MBC 스페셜 ‘7년의 기록, 지금 남극에서는’은 27일(월) 밤 11시 10분에 방송했다. (사진 MBC화면)
기후위기, 남극에서 시작된 인류의 미래 시험대
남극의 붕괴는 지구의 경고이자 인류의 시험대다.
지금 남극에서 일어나는 해빙, 화산활성, 알베도 저하, 생태계 변이는 결국 인간의 산업활동이 부른 결과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변화는 인류가 대응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칠레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
남극의 바람이 바뀌면, 안데스의 눈이 녹고, 태평양의 물결이 달라진다.
지구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한 칠레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남극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극의 변화는 곧 인간 문명의 변화다.
빙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지만, 지금 그 속도가 인간의 속도에 맞춰 빨라지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가장 냉정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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