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 행정과 공공정책을 기술로 혁신하는 거브테크(GovTech)가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부문이 함께 디지털 행정 생태계를 재편하며 행정 효율화·데이터 투명성·정책 접근성 향상을 꾀하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거브테크는 정부(Government)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행정, 공공 정책 등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혁신하는 것을 뜻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국민 누구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손쉽게 찾을 수 있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도움들을 받을 수 있다.
28일 시장조사회사 컴캡에 따르면 글로벌 거브테크 시장은 연평균 16.5%의 고성장을 지속해 2027년에는 1조2000억달러(18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AI 행정(공공 AX)을 축으로 한 정부 혁신이 본격화되며 정책적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청년 공감 콘서트에서 “정부 정책이 복잡하고 찾기 어렵다”며 “AI를 통해 필요한 지원과 정책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행정 영역의 인공지능 전환, 곧 거브테크 확산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정부 재정의 효율적 집행’ 역시 데이터 기반 정책 관리와 AI 행정 자동화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거브테크 창업 경진대회’, ‘공공 기술 혁신 축제’를 주관하며 민간 거브테크 기업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2025년 들어서는 각 부처별 AI 행정 효율화 과제가 현실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표적으로 과기정통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의 추진 과제인 ‘국민체감 선도프로젝트’를 통해 중앙부처·지자체·민간 플랫폼 간 공공 데이터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 중 청년정책 맞춤형 플랫폼 과제는 스타트업 웰로(Wello)와 함께 서울시, 제주도, 한국장학재단, 보건사회연구원이 협력해 구축됐다. 웰로는 KB국민카드 KB페이 내에 정책 검색·추천·신청이 가능한 기능을 구현해 청년 사용자가 1500개 기관·10만건 이상의 정책 중 자신에게 맞는 지원 프로그램을 손쉽게 찾도록 했다. 정책지원금 알림 기능까지 추가되며 민간 서비스 기반의 ‘국민체감형 공공 데이터 행정’ 사례로 꼽힌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웰로비즈 솔루션은 조달청·NICE평가정보와 협업해 기업 맞춤형 공공입찰 추천 서비스를 개발했다. AI가 나라장터 등 기관의 방대한 공고를 실시간 통합 분석해 기업 특성별 사업 기회를 제시함으로써 행정 효율을 높였다.
고용노동부는 HR테크기업 원티드랩과 협력해 ‘AI 기반 구인공고 작성 지원 서비스’를 ‘고용24’ 플랫폼에 도입했다. 기업이 기본 정보만 입력하면 AI가 직무 설명과 자격요건을 자동 생성해 준다. 공공부문 최초의 ‘AI 채용 보조’ 사례로 행정 절차 단축과 효율성 증대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민철도 에스알(SR)은 철도운영 전반을 AI로 전환하기 위해 오케스트로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측은 AI·클라우드 기반 예측정비, 고객 문의 자동응답, 안전관제 고도화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 중이다. 오케스트로는 정부의 AI 전환(AX) 전략에 부합하는 대표 민관 협력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각 부처, 공공기관의 AI 도입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행정 AX’를 이끄는 민관 협력 모델이 본격화됐다. 올해 9월 출범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역시 이런 기조를 제도화했다. ‘공공 AX’ 분과는 공공기관 자동화, 지방정부의 AI 행정 확대, 재난·치안 시스템 현대화 등 전방위 정책을 총괄한다. 정부는 민간 전문가를 위촉해 공공조직의 AI 전환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내 거브테크 선두주자는 단연 웰로다. AI 기반으로 국민에게 맞춤형 정책을 추천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며 올해 과기정통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웰로는 전국 46개 중앙부처, 593개 지자체, 2700여개 공익기관의 데이터를 연동해 매일 1만건 이상 정책 정보를 자동 수집·분석한다.
그 결과 이용자는 가족 구성, 소득, 지역 등을 입력하면 자신에게 맞는 복지·지원 정책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집행하지 못했던 예산 낭비를 최소화하며 실질적 정책 효율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웰로는 경희대학교와 공동으로 개발한 생성형 추천 알고리즘을 국제 AI학회 AAAI에 발표해 ‘혁신적 인공지능 응용상’을 수상했다. 해당 알고리즘은 기존 정책 추천 시 대비 클릭률(CTR)을 68% 향상시켜 약 780만달러의 예산 절감 효과를 입증했다. 연구성과를 실 서비스에 반영해 세계적 기술력을 증명한 사례다.
웰로 외에도 거브테크 스타트업 코딧(Codit)은 정부 정책 데이터를 분석·요약해주는 AI 리포팅 에이전트를 고도화 중이다. ‘대선 정책 모니터링 플랫폼’, ‘APEC 2025 정책 모니터링 플랫폼’을 연이어 선보이며 공공 데이터 분석 분야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거브테크 경쟁이 본격화됐다. 북미 기반의 유나 솔루션즈는 3400개 이상 공공기관에 조달·예산 클라우드 솔루션을 공급하며 입찰 절차 자동화로 공공부문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 AWS 챔피언스 어워즈에서 ‘공공 혁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보조금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플럭스는 출시 2년 만에 7000개 이상 비영리단체 고객을 확보했다. 연간 220억달러(30조원) 이상의 공공 보조금이 이 플랫폼을 통해 배분된다. 미국 기술지원기관협회(TAG)는 플럭스를 ‘가장 신뢰받는 보조금 관리 시스템’으로 지정했다.
또 다른 기업 오토리움은 생성형 AI 기반 행정문서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며 캘리포니아·워싱턴·플로리다 주정부와 협력 중이다. 입법 세션 자료 검토에 AI 모델을 활용해 매년 1000건 이상 분석 시간을 단축했다. 2025년 거버먼트 테크놀로지가 선정한 거브테크 TOP 100에도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시장 확장을 감안할 때 거브테크는 기술 경쟁과 규제 정비가 병행되는 산업으로 진입 단계에 있다. 정부 내 부처 간 데이터 표준화와 민간 기업의 서비스 연동 역량이 성장의 핵이다. 국내에서는 과기정통부·중소벤처기업부·NIA(한국정보사회진흥원) 등 10개 기관이 참여한 ‘데이터 실무 협의체’가 출범해 AI 친화적 데이터 개방을 모색 중이다.
민관 역할 분담 역시 명확해지고 있다. 정부는 거버넌스를 통해 제도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은 알고리즘 개발·UX(사용자 경험) 개선 등 혁신 실행력을 담당한다. 이런 구조는 K-거브테크 산업이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이 될 전망이다.
AI 거브테크 스타트업 웰로 김유리안나 대표는 “데이터와 AI를 통해 국민 누구나 필요한 지원을 손쉽게 찾는 것은 물론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수혜자들에게 잘 닿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거브테크의 본질”이라며 “민관이 긴밀히 협력할 때 정책의 전달력과 국민 만족도가 함께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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