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수급자 900명이 사는 전라남도 한 군의 유일한 사례관리자로 활동 중인 이영선(가명)씨는 이같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900명을 전부 관리할 수 없어 이 중 300여명만 사례관리를 하고 있지만 일부 대상자들이 사례관리를 거부하고 있어 개선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복된 약을 빼려고 하면 오히려 ‘왜 빼느냐’는 항의로 병원도, 간호사 출신 사례관리사도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어르신들이라 고집을 부리면 답이 없다”며 “약을 줄이는 것도 어렵고 상태가 악화해 병원에 한번 입원하면 1년 넘게 있는 경우도 많다”며 “본인 부담이 없으니 본인도 가족들도 퇴원을 거부한다. 결국 지자체 복지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의료급여 환자는 고령자·만성질환자가 많아서 먹어야 하는 약 자체가 많은 경향을 보인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무릎관절통 등 복합 만성질환일 경우 복수 의료기관에서 처방을 받아 자연스럽게 약 개수가 늘어난다. 다제약물이더라도 본인의 건강상태에 적절한 처방이라면 괜찮다. 문제는 여러 병원 이용으로 동일 또는 유사 성분이 중복돼 부작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홍윤철 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료급여는 말하자면 소위 무상의료의 함정”이라며 “환자 입장에선 많이 (약을) 쓰면 좋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건강에 해가 되는지를 모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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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투약량 점검·관리 필요…“주치의가 최적”
전문가들은 다제약물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진행한 ‘의료급여제도 개선 및 발전방안 수립 연구’ 책임자였던 여나금 연구위원은 “의료 이용이 많다고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건강결과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 예를 들면 사례관리나 다제약물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도 과다한 의료 이용을 막기 위한 제도가 있다. 정부는 정해진 의료급여 상한일수를 초과해 진료가 필요한 경우 지자체장의 승인을 받아 급여일수를 추가로 받는 ‘연장승인제도’를 운영 중이며 동일 질환으로 여러 병·의원을 이용하거나 중복 투약으로 인해 의료급여 연장 일수를 초과할 수 있는 대상자에게 1~2곳의 의료기관 선택해 집중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선택병의원제도’도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들이 애초 도입 목적과는 달리 수급자의 지속적 건강관리 역할은 미흡하고 오히려 과다이용자에게 본인부담을 면제해 주는 제도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여 연구위원은 “연장승인제도와 선택병원제 적용 기준을 투약 일수보다 내원일수 중심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여 연구위원은 이러한 선택병·의원 제도에 건강생활 인센티브를 연계하는 방안을 들었다. 여 연구위원은 “수급자의 건강관리 향상과 이를 통한 재정절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선택병·의원 대상자에게 건강관리 인센티브 시범사업을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엄혜연 건강보험연구원 박사는 고령자, 복합 만성질환자 등 특징에 맞는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노인은 부작용 위험 약물 중심으로 점검하고 만성질환자는 적정 투약량을 중심으로 점검하는 방식이다. 엄 박사는 “의료급여 대상자 전체를 일괄 관리하기보다 위험군을 선별해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아예 의료급여와 건강보험을 따로 운영하지 말고 건강보험이 의료급여까지 함께 관리하게끔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건보료와 기존 의료급여대상자가 부담하던 수준까지의 본인부담 지원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하고 의료 서비스는 건보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그대로 가자는 의미다.
장성인 건강보험연구원장은 “의료급여 제도는 의료급여 대상자를 공적부조로 국가에서 건강을 책임져주려는 제도인데 건강보험 대상자에 비해 건강 관리가 안 된다면 다양한 사업과 보장을 하는 건보에 넣어서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에 대한 비용을 기존 재원으로 보험료와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건강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동네 병·의원 주치의를 통해 의료급여 수급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방안도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는데 긍정적일 수 있다. 이를 두고 홍윤철 교수는 ‘주치의 제도를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사실 의료급여 대상자뿐 아니라 장애인, 재가 요양자 등도 다 비슷한 상황”이라며 “환자가 쓰는 약물 정보와 건강상태를 마이헬스웨이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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