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즈음 수강생들과 탑동 시민농장에 갔다. 올해도 시월의 마지막 날 야외 스케치 일정이 있다. 묵은 그림에서 묵은 자취를 본다. 빨간 엔실리지탑이 보이고 농장의 일손은 분주했다. 새파란 배추와 가을 무에 물 주는 모습, 허리 굽혀 우거진 채소를 가꾸는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교감이 느껴졌다.
주말농장으로 불리던 가족 텃밭은 수원에 여러 군데 있지만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큰 것 같다. 채소는 사 먹는 게 편하고 경제적일 수 있겠지만 내가 농작물을 직접 길러 먹는 의미가 훨씬 큰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농사일의 체험과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하는 가족과의 공동체적 유대와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부근엔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메밀밭과 억새도 무성해 가을에 젖게 했다.
농사를 취미처럼 하는 것과 생업으로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어떤 것을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최고인 뜻은 오랜 언어적 유산이다.
날씨가 소슬하다. 가을 모기처럼 날씨는 짓궂고 상냥하지 않다. 슬쩍 한 해도 기운다. 높은 이상에 튀어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착지도 잘해야 하는 시기다. 사람이 살아 가는 동안 근심 걱정은 쉼 없이 동행한다. 가을운동회는 끝났다. 남은 결실을 잘 거두자. 그리고 가을 우체국 앞에서 주소지 없는 편지 한 통이라도 마음에 남기자. 누구라도 그대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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