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한때 '땅콩은 아이에게 위험하다'는 조언이 상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반대가 맞다. 생후 몇 달 무렵부터 땅콩을 조금씩 먹은 아이들이, 평생 알레르기를 겪을 가능성이 훨씬 낮았다는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 연구팀은 전미 소아과 네트워크의 전자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2015년 이후 '조기 식품 도입 지침'이 확산된 뒤 땅콩 알레르기와 면역글로불린E(IgE) 매개 식품 알레르기 진단이 모두 줄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소아과학(Pediatrics, 2025)'에 게재됐다.
◆ 피하는 대신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땅콩 알레르기는 면역계가 땅콩 단백질을 위협으로 착각해 과도하게 반응하는 질환이다. 증상은 가벼운 두드러기부터 호흡곤란, 심한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오랫동안 의사들은 땅콩이나 달걀처럼 알레르기를 유발하기 쉬운 음식을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피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2015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기디언 랙(Gideon Lack) 교수가 이끈 'LEAP(Learning Early About Peanut Allergy)' 연구가 이 통념을 뒤집었다.
LEAP 연구에서는 중증 아토피피부염이나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고위험 영아에게 생후 4~11개월부터 땅콩을 소량 섭취하게 했다. 그 결과 땅콩 알레르기 발생률이 80% 이상 감소했다. 이후 2017년에는 권고가 일반 영아까지 확대됐고, 2021년에는 생후 4~6개월에 땅콩·달걀 등 주요 알레르겐을 일찍 도입하자는 '보편 조기 도입'으로 발전했다.
◆ 조기 노출, 실제로 알레르기 40% 감소
CHOP 연구팀이 2010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 소아 진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조기 도입 지침 이후 0~3세 아동의 땅콩 알레르기 발생률은 0.79%에서 0.45%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우유·달걀·밀·견과류 등 다른 IgE 매개 식품 알레르기도 1.46%에서 0.93%로 감소했다. 이는 조기 도입 전략을 적용한 약 200명 중 1명의 식품 알레르기를 예방한 셈이다.
연구를 이끈 데이비드 힐(David Hill) CHOP 소아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지침이 실제 진료 현장에 자리 잡자 알레르기 진단 자체가 줄기 시작했다"며 "공중보건 전략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기 도입'이 무제한 섭취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생땅콩은 질식 위험이 있어 피해야 하며, 땅콩버터나 가루를 물이나 모유, 이유식에 섞어 묽게 만들어 소량부터 시작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미 심한 습진이나 다른 알레르기 병력이 있는 고위험군은 전문의 상담 후 검사와 함께 의료기관에서 첫 노출을 시도하는 것이 안전하다.
◆ 회피보다 익숙함, 조기 노출이 답
힐 교수는 "조기 도입 전략이 모든 알레르기를 없애진 못하겠지만, '언제·얼마나·어떤 형태로' 노출하느냐가 분명해지면 보호 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아과 의사, 보호자, 보건당국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공중보건 성과는 극대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생후 4~6개월 무렵, 아기가 고형식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을 때 의료진과 상의해 땅콩·달걀 등을 안전하게, 규칙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 알레르기 예방의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를 "단순한 임상시험을 넘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알레르기 진단 감소를 확인한 첫 근거"로 평가하며, 회피 중심의 식습관이 과학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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