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대기업의 ‘전력직접구매제(PPA)’를 체리피킹으로 보고 대폭 개편 또는 폐지에 공감대를 형성하자, 전기료 비중이 높은 철강·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요금 인상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전력직구제 개편·폐지에 힘을 주는 것은, 산업 지원보다 형평성 논리를 우선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100원 수준에서 180원으로 약 70%나 오르면서 업계 전반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추가 부담이 최근 3년간 업계의 적자 규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며 “전기요금이 이전 수준으로만 돌아가도 적자 폭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PVC 생산의 경우 제조원가 대비 전기요금 비중이 과거 40%에서 현재 60% 이상으로 늘었다”며 “석화산업 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이 전기요금으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제도임에도 정부가 산업 지원보다 형평성 논리에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강업계에서도 정부가 ‘전력직구제’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제도 손질 가능성을 거론하자 원가 절감을 위한 마지막 안전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형평성 차원에서 제도 손질에 나서겠다는 것인데 업계로선 생존을 위해 자구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이를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도 전력직구제를 대기업의 특혜로 보기보다 급등한 전기요금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류성원 한국경제인협회 산업혁신팀장은 “대기업들이 전력 직접구매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기업들이 높은 전력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른 비용 절감 대안으로 직구제도가 부각된 것”이라며 “전기요금뿐 아니라 관세 등 대외 여건이 복합적으로 악화돼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이를 단순히 체리피킹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같은 전력직구제 폐지론에 대해 현재 정책적으로 추진 중인 사안은 없다면서도 이와 별개로 전력망 요금 현실화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국감에서 언급된 전력직구제 폐지 가능성 관련 발언은 내부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대기업들이 값싼 전력만 선택 구매하는 구조를 비판한 것”이라며 “다만 망 사용료 현실화(인상)의 경우 직접구매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송전망 부담금을 덜 내면, 그만큼 일반 요금제 이용자가 더 부담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체리피킹을 막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도 전력 요금의 형평성과 원가 반영을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요금에는 이미 송배전망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으나 별도 요금표는 2020년 이후 한 번도 조정되지 않았다. 이에 물가 상승과 신규 투자 증가를 고려하면 망 사용료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3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대기업들이 한전을 통하지 않고 발전사업자로부터 전기를 직접 구매하는 ‘전력직접구매제’의 폐지 필요성이 거론됐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은 전력직접구매제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전력직구제도는 당초 전력시장의 경쟁을 촉진해 전기요금의 부당한 인상을 막기 위한 제도로 도입된 것이었다”며 “국제 연료가격이 급등했던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과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한전이 손실을 떠안았지만, 이후 연료가격과 환율이 안정되면서 전력 도매요금이 하락세로 돌아오자 누적 적자는 한전이 모두 부담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전력직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제도의 맹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국제 연료가격이 오르면 전력 원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내리면 요금을 인하하는 등 시장 원리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만약 이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전력직구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원주 기후부 에너지전환정책실장은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시장의 왜곡에 따라서 대기업 고객들이 시장을 이탈해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이는 당초 제도가 예정했던 상황은 아니다”라며 “체리피킹 논란이 없도록 망요금 현실화 등 제도적 보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