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면에는 우리 군의 ‘조용한 작전’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난 여름부터 구슬땀을 흘렸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24일, 경주 보문관광단지 일대엔 각국 대표단을 위한 부대행사장이 들어서 있었다. 경찰차가 도로를 오가며 경광등을 번쩍였다. 80m 높이의 경주타워에 오르니 보문호를 끼고 정상회의장인 화백컨벤션센터와 각국 정상 숙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현장에서 만난 이종근 대대장은 “우리 군은 보문관광단지를 기준으로 외곽을 4개 지역으로 나눠 경호·경비작전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PEC 정상회의 같은 국가급 행사의 경호·경비작전은 경호처와 경찰이 주도하고 군은 외곽과 해상·공중 감시, 대테러 대비 등의 지원 임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단순 ‘지원부대’ 차원이 아니라 ‘국가대표 경호·안전체계’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재난·테러 대비와 교통·인프라 보호, 사이버·전자 위협 대응, 민·군 협력 및 이미지 관리도 군의 임무다. 이번 APEC 정상회의가 우리 군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기회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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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APEC 대비 지난 9월 26일 경주시 일대에서 이뤄진 2025 국가대테러종합훈련에서 육군 50보병사단 장병들이 차륜형장갑차에서 하차해 기동하고 있다. (사진=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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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은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지원을 위해 39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한다. 이를 지휘하는 군 작전본부는 제2작전사령부에 설치됐다. APEC 정상회의장 외곽경계는 50사단이, 부산에서 진행되는 경제인 회담 등에 대한 경호·경비작전은 53사단 몫이다. APEC 정상회의의 관문공항인 김해공항은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이 맡는다. 포항과 부산 등 인근 해상권역 경계작전은 해군 1·3함대사령부가 책임진다. 참가국 주요 인사들을 위한 운전과 통역, 검측, 대테러 임무도 450여명의 군인이 담당한다.
특히 APEC 행사장 외곽 경계작전은 목진지와 예비진지, 기동순찰, 기동타격대 등으로 이뤄진다. 50사단은 최적의 작전을 위해 3개월 전부터 인근 지형·지물을 답사하고 간이 천막으로 수십개의 목진지를 설치했다. 멧돼지 출몰 지역이 많아 사전에 이들이 오간 발자국을 분석하고 병력 이동경로를 짰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과도 사전에 경호·경비작전 협조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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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육군 50보병사단 장병들이 경주시 일대에서 APEC 정상회의 경호·경비작전 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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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육군 50보병사단 장병들이 경주시 일대에서 APEC 정상회의 경호·경비작전 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APEC 회원국 정상 숙소들이 위치한 보문관광단지가 보인다. (사진=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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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 경계작전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보문호 인근 야산을 올랐다. 곳곳에 목진지와 예비진지가 숨어 있었다. 작전요원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3교대, 24시간 근무에 돌입한다. 산길이 간간이 쏟아지는 비에 미끄러웠다. 작전요원들은 간단한 골절이나 타박상 등에 대비한 의약품을 소지하고 전문 의료진도 구역마다 배치됐다. 3~4도까지 내려가는 기온 탓에 보온대책 강구 지시도 내려왔다고 한다.
경주 보문단지는 관광객과 시민의 왕래가 잦은 둘레길 구간이다. 군은 시민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전요원들에게 실탄 대신 테이저건과 3단봉만 지급했다. 요원들은 PS-LTE 통신장비로 실시간 연락을 주고받고, ‘액션캠’을 착용해 혹시 모를 상황을 기록한다. 이 대대장은 “시민들에게 작전 중임을 알리고 통행을 안내하는 것도 우리 임무”라면서 “군·경 합동검문소도 곳곳에 설치돼, 거동수상자 발견 시 즉각 경찰과 공조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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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공군 전투기 편대가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일대 상공에서 공중전투초계 임무를 하고 있다. (사진=공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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