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뿌리가 되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 봅니다.〈허트 로커〉부터 〈제로 다크 서티〉까지, 강렬한 리얼리즘과 폭발적인 서사를 구축해온 그녀의 세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죠. 영화 속 긴장감의 미학과 여성 감독으로서의 독보적인 시선을 지금 다시 짚어봅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2025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스틸컷/ 각 영화 제공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핵폭탄이 터지기 직전의 공포를 서서히 고조시킵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언제나 위기의 본질을 탐구해왔는데요. 이번 넷플릭스 스릴러는 정체불명의 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발사되며 시작됩니다. 세상이 단 몇 분 안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그 혼돈의 상황 속에서, 영화는 영웅 서사 대신 책임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꺼내 듭니다. 인간이 그리고 미국이 재난을 대하는 방식에 집중합니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같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긴장감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데요.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겠죠. 비글로우 감독은 “폭력은 행동이 아니라 상태다”라고 말해왔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긴장은 폭발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저 버튼 앞에 선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숨소리에서 나타납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비글로우 감독의 긴장 미학이 가장 현대적으로 구현된 작품입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그녀가 쌓아온 전쟁·폭력·시스템·심리의 모든 연구가 집약된 결산판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비글로우 감독의 대표작을 다시 돌아봅니다.
〈더 허트 로커〉 2008
영화 '더 허트 로커' 포스터/ 각 영화 제공
〈더 허트 로커〉는 그야말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정체성을 확립한 영화입니다. 이라크 전쟁 속 폭탄 해체반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긴장감은 한 톱니도 헐겁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병사들의 시선과 호흡을 따라가며, 그들이 죽음과 공존하는 방식을 기록합니다. 폭발물 앞에서 땀을 닦고, 숨을 고르고, 한 걸음 다가서는 장면들에서 감독의 리얼리즘은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전쟁의 쾌감을 탐구한다는 것입니다. 위험이 두려움이 아닌 중독이 되는 순간,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까요? 영화는 질문을 던집니다. 주인공 제임스 중사는 전쟁터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보다 전장이 편합니다. 이 아이러니는 전쟁의 본질을 꿰뚫는 동시에, 비글로우 감독의 세계관을 대변합니다. 비글로우 감독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최초의 여성 감독상 수상자로 오스카에 이름을 남겼지만, 정작 그녀가 보여준 건 남성적 강단보다 인간의 불안이었습니다. 폭발보다 더 큰 건, 그 폭발을 기다리는 인간의 심리였던 거죠.
〈제로 다크 서티〉, 2012
영화 '제로 다크 서티' 포스터/ 각 영화 제공
〈더 허트 로커〉의 팀이 다시 모여 만든 첩보 스릴러입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CIA 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총성보다 무서운 건 침묵의 회의실입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영화를 통해 폭력의 근원을 정보 시스템 안에서 찾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총을 들고 싸우지 않습니다. 대신 키보드와 전화, 보고서와 허위 정보 사이에서 싸웁니다. 그녀는 액션 대신 현실적인 긴장감을 선택했습니다. 서류를 넘기는 손끝, 카펫 위의 발소리, 무전기의 잡음까지 긴장을 조입니다. 첩보 스릴러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진실을 좇는 인간의 집착과 그로 인한 윤리적 붕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목표를 향한 집요함은 미덕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좀먹는 독이기도 하죠. 비글로우 감독은 여기서도 이분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 정의와 복수, 그 경계는 모래처럼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더 리얼합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국가의 폭력을 가장 냉정하게 기록한 영화 중 하나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불쾌함이 남는 건, 우리가 여전히 그 시스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 2017
영화 '디트로이트' 포스터/ 각 영화 제공
〈디트로이트〉는 폭력의 진화를 다룹니다. 이번엔 총과 전쟁이 아니라, 권력과 제도가 총알의 역할을 합니다. 1967년 미국 디트로이트 폭동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 인권과 경찰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입니다. 비글로우 감독은 카메라를 피해자가 아닌 목격자의 위치에 둡니다. 관객은 사건을 체험하는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방관자가 됩니다. 영화의 공포는 사실성에 있습니다. 감독은 현실의 폭력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는 시스템의 폭력, 즉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해부합니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무력감입니다. “저항이 불가능한 세상”이란 메시지를 건조하게 내뱉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비글로우 감독이 보여준 가장 사회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폭력의 주체와 피해자 사이에 윤리적 선은 희미해지고, 남는 건 누가 진짜 인간인가라는 질문뿐입니다.
〈포인트 브레이크〉, 1991
영화 '포인트 브레이크' 포스터/ 각 영화 제공
〈포인트 브레이크〉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원초적 에너지가 그대로 담긴 작품입니다. 서핑과 범죄, 자유와 통제, 1990년대 초반의 공기를 가장 강렬하게 담은 액션 영화입니다.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선과 악의 경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낯설 만큼 생생합니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파도입니다. 비글로우는 물결 위의 자유를 폭력의 반대편에 있는 해방의 은유로 사용합니다. 은행을 털고, 파도 위를 달리며, 자유를 향해 추락하는 남자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비유입니다. 〈포인트 브레이크〉에서 비글로우 감독은 장르를 이용해 인간을 말하는 방식을 확립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모든 작품은 이 영화의 확장선 상에 있습니다. 자유는 위험과 닮아 있고, 위험은 곧 살아 있음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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