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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한미 양국이 3500억달러(약 500조원)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관세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집권 첫 아시아 순방에서 베트남, 태국 등과 무역 합의를 차례로 마친 후 중국과도 무역 협상에 나선 상황으로, 한국만 ‘빈손’인 상태로 고관세 상태를 이어갈 수 있다는 부담도 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세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양국 정상 간 ‘상징적 진전’을 확인한 후 연말께 실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무리한 합의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정상회담 이틀 앞두고도 이견…결렬 부담도 커져
27일 통상당국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관세협상의 핵심 쟁점인 대미 투자의 직접투자 규모와 방식, 기간 등을 두고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공개된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미)투자 방식과 규모, 시기, 손실·이익 분배 등이 모두 쟁점”이라며 “협상 결과가 한국에 파국적 결과를 초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그들(한국)이 준비된다면 나 역시 준비됐다”며 협상 타결 기대감을 높이는 발언을 했으나 이는 ‘본인이 정한 방향대로 한국이 따라오라’는 협상 전 압박성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국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선 한국 정상을 APEC 주최국으로서 브라질, 인도, 중국 등 다른 주요국보다 먼저 만나는 만큼 (한국에) 압력을 넣으면 자국 요구를 수용해주리라 여기는 분위기일 것”이라며 “정부도 APEC 정상회의 개최 모멘텀을 잘 살려야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으로선 협상 지연에 따른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은 26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과 무역협정을 맺은 데 이어 오는 30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관세협상에 대해서도 긍정적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한미 합의가 타결되지 않은 채 미중 간 합의까지 이뤄진다면 우리가 궁지에 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산업의 입지가 굉장히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 앞둔 美도 정치적 부담…늦어도 연내 타결 전망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세협상이 최종 합의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일각의 협상 장기화 우려와 달리 연내에는 합의에 이르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역시 한미 관세협상 장기화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지고 있는 만큼 APEC이란 이벤트 때문에 무리하게 타결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도 자동차 관세 역차별 등의 기업 부담을 지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 역시 내년 11월 선거를 앞두고 한국과의 협상 불확실성을 오래 끌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정상회담 때의 이벤트성 합의가 없더라도 실질적 협상이 이어지면서 연내 어떤 형태로든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협상 장기화도 가급적 피해야하지만 미국 측 요구에 섣불리 응했다가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된 미일 합의 역시 미국 측에선 5500억달러에 이르는 일본의 대미 투자가 ‘선불’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측에선 직접 투자비중이 2% 수준이라며 말을 달리하고 있다. 한미간 협상에서 논의 중인 3500억달러 대미투자 중 2000억달러 분할 직접투자안이 불공정 합의라고 평가된 일본보다 더 나쁜 조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적 압박 속 불명확한 문서에 성급하게 합의한다면 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한 미국 법원의 위헌 판단도 남은 변수다. 미국 법원은 앞서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른 상호관세 부과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며 오는 11월 5일(현지시간) 연방 대법원이 이에 대한 첫 심리를 진행한다. 트럼프 정부는 패소하더라도 또 다른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며 현 관세정책 기조를 고수하고 있지만 최종심 패소 땐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해 “(미국 소송 상황도) 고려하고 있다”며 “다만, 미국 정부는 다양한 관세 인사 수단이 있다며 전혀 걱정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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