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시기, 약 3,300년 전 왕가 무덤 인근에서 발견된 손바닥 크기의 뼈 피리 한 점이 '경비 신호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송아지의 발가락뼈로 만들어진 이 피리는 당시 왕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대가 출입을 통제하거나 신호를 주고받는 데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에 게재됐다.
◆ 왕가 무덤 곁에서 울린 '신호의 소리'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미셸 랭리(Michelle Langley)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고대 도시 아케타텐(Akhetaten·현 암아르나) 동쪽 외곽의 '석재마을(Stone Village)' 유적에서 송아지의 첫 번째 발가락뼈(제1지골)를 정밀 분석했다. 길이 6.3cm 남짓한 이 뼈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으며, 미세현미경 관찰 결과 드릴로 가공한 흔적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단순한 형태 분석을 넘어 현대 소뼈를 이용한 ‘재현 실험’을 진행했다. 동일한 각도와 위치로 구멍을 뚫은 복제품을 제작해 소리를 시험한 결과, 약 3kHz대의 날카롭고 높은 단일음이 발생했으며 일정한 강도로 불었을 때만 명확히 울렸다. 이러한 특성은 먼 거리에서도 신호로 인식되기 쉬운 구조로, 단순한 악기나 장난감보다는 실용적인 '신호 도구'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물이 발견된 장소 역시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피리는 왕가 무덤 인근의 경비 거주지에서 출토됐으며, 당시 경비대가 출입을 통제하거나 지시를 전달하는 신호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아르나는 파라오 아멘호텝 4세(아케나텐)가 세운 도시로, 태양신 아톤을 중심으로 한 종교 개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신성한 무덤 구역을 관리하고 지키던 사람들의 삶은 기록에 거의 남지 않았다. 이번에 발견된 피리는 이 잊힌 계층의 존재를 보여주는 드문 물증이다. 화려한 벽화나 파피루스 문서가 아닌, 일상의 도구 속에서 고대 사회의 질서와 감시 체계가 드러난 셈이다.
◆ 고대의 '경찰 피리', 권력의 통제 도구였나
연구팀은 이 유물이 고대 이집트의 경비 조직 '메드자이(Medjay)'가 사용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메드자이는 왕가 무덤의 출입을 관리하고 침입자를 감시하던 이들로, 사실상 고대 이집트의 첫 '경찰 제도'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피리 같은 단순한 도구가 명령 체계와 규율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랭리 박사는 "화려한 제사용품이 아닌 단순한 뼈 유물에서도 사회의 통제 구조와 권력 관계가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고대 이집트의 권력 체계가 일상적 도구와 공간 관리까지 확장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피리 한 점이 당시 왕가 무덤의 경계와 감시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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