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0월 27일 사상 처음으로 주가 10만원을 돌파했다. 이재용 회장이 취임 3주년을 맞은 이날 축포를 터뜨리며 성공적인 ‘왕의 귀환’을 알렸다. 실적도 상승 궤도에 올라탔다. 위기설을 양산했던 반도체 불황의 긴 터널을 벗어나,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초격차’를 새긴 주춧돌 위에 ‘뉴삼성’의 기틀을 세우기까지 지난 3년은 이 회장에게 와신상담(臥薪嘗膽)과 같다. 지금부턴 재도약의 시간이다. 반도체 신화에 이은 AI 시대 주역으로 삼성을 이끌어갈 리더, 바로 이재용의 시간이 시작됐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삼성전자의 긴 암흑기를 청산하기 위한 필승 카드로 이재용 회장은 반도체를 꺼내 들었다.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재도약을 위한 유일한 해답이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의 불황으로 위기설에 직면하며 곤혹을 치렀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각오가 오늘의 성과로 이어졌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분기 잠정 실적에서 매출 86조원, 영업이익 12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매출 80조원을 넘겼고, 10조원대 영업이익은 5개 분기 만에 회복했다.
반등의 실마리는 역시 반도체였다. 이번 호실적은 반도체 사업 개선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판매 증가, 디램 가격 상승, 파운드리 부문의 적자 축소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 파운드리, TSMC 아성에 균열을 내다
2나노 시대에 본격 진입한 파운드리 사업은 삼성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핵심 축으로 자리잡았다. 삼성 파운드리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내년부터 2나노 공정 양산을 예고했고, 이 투자는 이 회장이 거듭 말한 “성과로 말하겠다”는 선언의 실체였다.
지난 7월 테슬라와의 23조원 규모 2나노 차량용 칩 계약은 단일 고객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TSMC 중심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포석으로 평가된다.
삼성은 기술과 품질, 고객 신뢰에서 모두 승부를 걸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로 공정 설계부터 패키징까지 전 공정을 통합했고, 베이스 다이(Base Die) 생산도 자체 파운드리에서 해결하는 수직 계열화 체계를 확립했다. 생산 효율성과 품질 안정성 모두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스펙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삼성은 기술적 강점을 바탕으로 타이밍과 유연성도 함께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HBM 점유율 17%→30%, 추격 가속도 붙었다
메모리 사업에서도 이 회장의 전략은 뚜렷했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사내 전 계열사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메모리는 삼성의 근간이며 AI 시대의 핵심 동력임에도 이에 대처하지 못했다”며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기술 내재화와 양산 속도 모두를 끌어올릴 것을 주문한 것이다.
HBM 시장에서 삼성은 한동안 SK하이닉스에 밀려 있었지만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의 HBM 점유율은 17%에 불과했지만, 하반기부터 양산 확대와 고객 확대가 본격화되면서 2026년엔 30% 이상을 점유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력은 이미 입증됐다. 삼성은 지난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수율 90%, 핀 속도 11Gbps의 HBM4를 선보였다. 또한 평택 P4 캠퍼스에는 이미 1c(6세대) D램 설비 투자가 마무리됐다.
시장 분위기도 삼성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D램 평균 현물가격은 올해 초 1달러 초반이던 것이 최근 5.87달러까지 치솟았으며 4분기에도 20% 이상 가격 상승이 예고됐다. 업계는 AI 가속기당 HBM 탑재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의 흐름에 대해 “HBM 수요는 지금이 시작일 뿐”이라며 “AI 가속기 한 대에 12개씩 들어가고 머지않아 16~20개가 기본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생태계 확장과 중장기 전략…“불황일수록 더 과감하게”
삼성은 2019년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총 133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은 이 회장이 직접 챙기는 프로젝트다. 기흥 R&D 단지에는 20조원을 투입했고, 미국 오스틴·테일러, 유럽, 일본 등으로 공급망 다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22년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이해 계열사 사장단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불황일수록 더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며 인재 영입과 조직 개편을 동시에 지시한 바 있다. 반도체 부문 CTO를 신설하고 부문장 교체를 단행한 것도 기술 중심 체제로의 전환 일환이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이라는 그의 철학은 기술과 사람, 두 축을 동시에 강조한다.
SK하이닉스·TSMC와의 격차를 좁히고 고객 맞춤 전략을 강화하며 글로벌 AI 슈퍼사이클을 기회로 삼겠다는 삼성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반도체 전략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으며, 특히 일부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김정호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D램 적층 기술에서 승부가 갈렸던 상황”이라며 “다음 승부처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될 것인데, 이는 삼성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반도체는 직접 제조 능력이 핵심인 만큼 파운드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삼성은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삼성은 위기 때마다 변화를 택했고, 그 변화는 늘 혁신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이 강조한 “성과로 말하겠다”는 다짐은 수치와 기술, 그리고 사람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길었던 정체의 시간을 지나 삼성은 다시 한번 ‘삼성의 시간’을 향해가고 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