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몰락했던 일본 조선업, '북극항로 시대' 앞두고 부활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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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몰락했던 일본 조선업, '북극항로 시대' 앞두고 부활 시동

포인트경제 2025-10-27 09:45: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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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업계, 1조 엔 규모 지원 펀드 준비
2035년까지 연간 건조량 1800만 목표
북극항로 상업화·친환경 선박 수요가 성장 동력
한국·중국과의 격차 좁히려 자동화·설비투자 확대

[포인트경제] 일본이 조선산업의 방향을 다시 ‘확대’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조선공업회(SAJ)는 지난 10월 23일, 2035년까지 국내 조선 건조량을 현재의 두 배 수준인 연간 1800만 톤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목표가 아니라 정부와 업계가 함께 발맞춰 추진하는 계획이다. 여당인 자민당은 이미 1조 엔 규모의 공적 펀드 조성을 제안했고, 업계 역시 이마바리조선(今治造船)을 비롯한 17개사가 참여해 3500억 엔 규모의 설비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이 다시 조선업에 힘을 쏟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이번 행보는 전략적 함의가 크다.

북극권 연구선 ‘미라이Ⅱ(みらいII)’ 진수식 = 2023년 3월 19일, 요코하마 JMU 이소고 조선소 (JAMSTEC 제공)/지지닷컴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북극권 연구선 ‘미라이Ⅱ(みらいII)’ 진수식 = 2023년 3월 19일, 요코하마 JMU 이소고 조선소 (JAMSTEC 제공)/지지닷컴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일본은 한때 세계 조선업의 선봉장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세계 신조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조선 강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엔고 부담, 환경규제 대응 지연, 인력 고령화, 해외 조선소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점차 힘을 잃어갔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일부 조선소는 문을 닫거나 합병으로 재편됐다. 그 사이 중국은 국유 조선 그룹을 통합해 막대한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했고, 한국은 LNG선·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 1위를 굳혔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세계 점유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며 존재감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다시 조선업 확대를 선언한 배경에는 글로벌 수요 구조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선 북극항로의 상업 운항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아틱 익스프레스’를 유럽까지 운항하며 시험 항해에 나선 사실은 일본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됐다. 북극항로가 정기화되면 쇄빙선·내빙선 등 특수 선박 수요가 늘어나는데, 이는 일본이 과거부터 강점을 보여온 분야다. 한국 역시 쇄빙 LNG선 건조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의 전통적 기술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또 하나는 친환경 선박 전환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 강화로 암모니아·메탄올 추진선, LNG 추진선 발주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가 이미 이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경제이행채 등을 통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원한다면 기술 격차는 단기간에 좁혀질 수 있다. 일본은 조선업을 단순 제조업이 아니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있어, 정책적 드라이브도 한층 강력하다.

일본의 투자 방향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업계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대형 골리앗 크레인을 추가로 도입하고, 노후 도크와 선대를 재배치하며, 블록 조립·용접·도장 공정을 자동화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히 생산량 확대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일본 조선업계는 숙련공의 고령화로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이를 자동화 설비와 로보틱스 도입으로 보완하려 한다.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뚜렷하다. 자민당은 6월 ‘조선업 재생을 위한 긴급 제언’을 통해 1조 엔 규모의 펀드 조성을 제안했으며, 독점금지법 완화와 금융·세제 지원 방안까지 포함해 업계 지원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일본이 조선업을 단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반 산업으로 다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여당은 조선업을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정책적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의 부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니케이를 비롯한 일본 언론은 건조비 상승을 구조적 과제로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자재·노무비가 꾸준히 오르는 상황에서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설비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급망 리드타임, 즉 크레인·자동화 설비 납기 지연과 환경 인허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이 이미 대형 도크와 크레인 인프라를 갖춘 상황에서 일본이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전경/산케이신문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전경/산케이신문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한국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움직임이 직접적인 위협인지, 아니면 장기적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 가늠하는 일이다. 당장은 일본의 조선업 확대가 한국의 시장 점유율을 흔들 수준은 아니다. 한국은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극항로와 같은 특수 시장이 열리고, 친환경 연료선 발주가 본격화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본이 다시 ‘틈새 시장’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고, 이는 한국과의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자동화·로보틱스 중심 투자 전략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조선업계 역시 인력 고령화와 숙련 인력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데, 아직은 인력 집약적 구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일본이 생산 구조를 개편해 생산성을 높인다면, 이는 한국 조선업에도 장기적인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일본의 조선업 확대 선언은 단순히 자국 산업을 다시 키우겠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일본은 글로벌 시장의 구조 변화와 경제안보 논리에 기반해 조선업을 다시 전략 산업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불안, 인력난 등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부활 시도는 단기적 위협이라기보다, 한국 조선업이 앞으로도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대응해야 할 새로운 변수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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