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한미 관세협상, 굴복이냐 항전이냐...“삼전도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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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한미 관세협상, 굴복이냐 항전이냐...“삼전도가 말한다”

투데이신문 2025-10-27 09:43: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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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오늘의 주요 이슈를 사실-맥락-관점의 세 축으로 풀어드립니다. 음악에서 ‘피처링’은 협업과 도움을 뜻하고, 저널리즘의 Feature는 단순 속보가 아닌 깊이 있는 맥락과 스토리를 다룹니다. 〈뉴스 피처링〉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담아 뉴스의 본질과 함의를 알기 쉽게 풀어내 여러분의 뉴스 생활을 입체적으로 피처링 해드리겠습니다. 내용을 입력하세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공동취재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공동취재단]

【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대해 부정적이고 어려운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이 대통령은 27일 공개된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세부 내용에 대한 한미 간 논의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투자 방식, 투자 규모, 일정, 손실 공유 방식, 배당 분배 등 모든 게 여전히 쟁점"이라고 말해 APEC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괄 타결’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인터뷰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방미 협의(한국시간 23일)를 진행한 직후인 24일 이뤄졌습니다.

실무 장관과 대통령 모두 미국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음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것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실제로 협상이 매우 난항에 처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이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 등이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실제로 엄청난 벽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모두 나서서 협상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선불’ 입장을 고수하는 것에 대한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동시에 미국에 대한 협상 타결의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큰 틀의 상호 관세협상을 타결했지만 관세협상의 핵심 사안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세부 내용을 두고 협상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1차 타결’은 최종협상을 위한 일종의 ‘몸풀기’였을 뿐 실제로 구체적인 투자방식 등의 핵심 사안이 타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투자금액도 중요하지만 그 방식을 놓고 한국과 미국은 서로 ‘동상이몽’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초반에 강한 압박을 하다가 극적으로 타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으로 협상을 진행하다가 의외로 미국이 강하게 나오자 당황해하는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용범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틀 사이에 다시 미국을 긴급 방문하는 것만 봐도 정상적인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 대통령은 블룸버그와의 인티뷰에서 “한미 관세협상이 한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간 ‘경제적 합리성’을 기본이 돼야 한다면서 국익 중심의 협상을 진행하라고 협상팀에 지시해왔습니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겠지만 그것이 한국에 재앙적인 결과(catastrophic consequences)를 초래할 정도여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대화가 계속되고 있으며 생각에 일부 차이가 있지만 협상 타결 지연이 꼭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자 우방이기 때문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지역 순방길에 오르면서 했던 발언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가진 약식 회견을 통해 ‘한국과 이번 만남에서 관세 협상을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의에 “협상 타결(being finalized)에 매우 가깝다”면서 “그들(한국)이 준비가 된다면, 나는 준비됐다”고 답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낙관적 발언과 이 대통령의 ‘한미 간 논의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언급 간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발생합니다. 미국은 3개월여를 끌어온 관세협상에 대해 최종적으로 “타결에 매우 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세부 내용을 보면 미국은 250억 달러씩 8년 동안 직접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 한국은 1년에 150억 달러 이상은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1년 투자액이 거의 2배 차이가 난다는 것은 양국이 큰 틀에서부터 이미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대통령이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 전 대통령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이번 정상회담에 타결될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것은 투자가 아니라 조공”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경제수준과 현실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의 불가능한 기준선을 넘어오라고 닦달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반감과 부정적 인식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아예 ‘장기 항전’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강경론도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던 김용범(왼쪽)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0월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던 김용범(왼쪽)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0월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제 공은 다시 한미 정상에게 넘어갔습니다. 협상의 향배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이 ‘선불 투자’를 요구하고 한국이 ‘재앙적 결과’를 우려하는 기 싸움이 이어진다면 비록 타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굴욕 협상’이라며 국내 여론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88년전인 1637년(인조 15년) 일어난 삼전도의 굴욕이 떠오릅니다. 병자호란 직후 당시 조선은 바람 앞의 초라한 등불이었습니다. 지금도 “삼전도의 굴욕은 전쟁에서 진 결과가 아니라 협상에서 진 결과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조선은 명분을 지키려다 현실을 잃었고 결국 무릎을 꿇은 뒤에도 200년 넘게 치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한미 관세협상은 그 삼전도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조공의 이름으로 체결된 협정’을 쓰지 않으려면 이번엔 굴복이 아닌 장기 항전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협상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역사는 굴복을 기억하지 않지만 버틴 자의 항전을 기록할 것입니다.

사실 삼전도의 본질은 ‘굴복’의 선택이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조선 조정은 47일간 남한산성에서 결사 항전에 돌입했으나 군사력과 식량, 외교적 지원의 한계를 앞에 두고 청나라의 요구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표면상은 강화였으나 실제로는 왕이 신하의 예를 갖추고 왕자와 관리들을 볼모로 보내고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까지 세우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속국으로 복속됐고 수십 년간 조공과 굴욕이 이어졌습니다.​

명분만 중시하다 현실을 외면하면 치욕이 남습니다. 당시에도 척화파는 ‘오랑캐와의 타협은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명분에 매달리다 현실적 준비 부족이 굴복과 장기적인 치욕을 초래했습니다. 삼전도의 역사는 항전의 필요성뿐 아니라 단순 타협이 아니라 준비된 항전의 전술과 국가적 버티기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현재의 한미 관세협상도 현실적 압박이 아무리 크더라도 역사적 굴욕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장기 항전’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철저한 전략적 준비 없이 감정과 국수주의만 앞세우다가 더 큰 국가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대미 관세협상 장기 항전은 ‘굴욕적 타협’을 피하기 위한 최고의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전도의 교훈은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나 체면을 위한 무모한 항전만으로는 치욕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실제로 삼전도에서 조선은 명분을 앞세워 준비와 전략 없이 버티다가 결국 더 뼈아픈 굴욕을 맛봐야 했습니다. 결연한 항전의 결심 뒤에는 반드시 치밀한 전략, 형세 판단력, 국민통합과 지지가 따라야 합니다. 죽기 살기로 맞서야 한다면 그 목숨을 내던질 만한 전략적 준비와 형세 파악이 확실히 갖춰진 뒤에야 진짜 항전의 가치와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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