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지역의 esg현황
▲ 중남미 지역의 esg현황
중남미 지역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조용하지만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라틴아메리카는 정치적 불안정, 불완전한 규제, 그리고 저개발 산업구조로 인해 글로벌 ESG 담론의 변방에 머물렀다.
그러나 2024년 이후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국제기구와 주요 투자기관이 주목하는 ESG 투자 신흥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지속가능성’이 경제성장의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ESG 투자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7억8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아직 북미·유럽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지만, 향후 5년간 연평균 17.7%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2030년에는 약 4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녹색채권(Green Bond) 발행과 ESG 통합형 펀드(Integration Fund)가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그린본드 발행량은 지난 3년간 60% 이상 증가했으며, 브라질·칠레·콜롬비아·멕시코가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중남미가 단순히 ‘자원수출형 경제’에서 ‘기후혁신형 경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적 기반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은 ESG 관련 입법과 정책을 도입하며 보고 기준을 마련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IFRS S1/S2)을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또한 환경정보 공개와 공공참여를 보장하는 ‘에스카수 협정(Escazú Agreement)’이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의 환경 거버넌스 구축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 보고의 질과 범위는 미흡하다. 라틴아메리카 기업의 약 46%만이 체계적 지속가능성 정책을 갖추고 있으며, 다수 기업은 ESG 공시를 ‘홍보용’에 그치는 수준으로 운영한다는 평가도 있다.
콜롬비아 기업의 공시율은 지역 최고 수준인 51%이지만, 복수의 ESG 표준을 적용하기 어려워하는 기업이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 같은 불균형 속에서도 시장은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금융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하면서, ESG는 ‘윤리적 선택’이 아닌 ‘경제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칠레는 세계 최대의 리튬 생산국 중 하나로서 재생에너지 산업과 ESG 투자를 결합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 하고, 브라질은 아마존 삼림 복원 프로젝트와 녹색채권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콜롬비아와 페루는 수력·태양광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통해 ESG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멕시코는 북미 시장과 연계된 청정 제조 생태계를 조성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은 중남미 각국이 산업 구조 전환을 통해 ESG를 ‘경제 생존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ESG 규제와 데이터 인프라가 여전히 미비하고,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나 사회적 책임 경영 문화도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특히 환경(E) 부문에서는 채굴산업의 확장, 삼림파괴, 원주민 인권 침해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국제 NGO ‘글로벌 위트니스’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토지 보호 활동가의 70% 이상이 중남미 지역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사회(S) 부문에서도 노동권, 젠더평등, 지역사회 보호 등 기본적 기준이 미흡하며, 지배구조(G) 영역에서는 투명한 감사·이사회 독립성이 여전히 취약하다.
그러나 이 모든 약점은 동시에 잠재적 기회로 해석된다. ESG 투자의 여백이 크다는 것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지속가능 농업, 산림 복원, 그린 인프라 등 분야에서 국제 자본이 적극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기후금융(Climate Finance)과 ESG 인프라펀드가 중남미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브라질의 국영개발은행(BNDES)은 녹색 프로젝트에 대한 융자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고 있으며, 칠레와 페루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녹색채권 발행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과 아시아 기업들에게도 중남미는 ‘ESG 협력의 신시장’으로 열린다.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과 공급망 다변화가 본격화되면서, 아시아-중남미 협력의 여지는 커지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수처리, 스마트시티 기술은 중남미 도시와 산업단지의 ESG 전환에 적합한 분야다.
또한 중남미는 K-콘텐츠, K-기술, 디지털 금융 등 한국형 지속가능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중남미의 ESG는 ‘늦은 출발이지만 빠른 성장’을 상징한다. 완성된 체계보다는 실험의 공간에 가깝지만, 그 실험이 글로벌 녹색자본의 향방을 결정할 수도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ESG는 지금, 산업혁명 이후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생태보존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이 대륙은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세계 ESG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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