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시티에서 섭씨 34도를 넘어선 기록적인 더위가 관측됐고, 북부 타마울리파스 주에서는 47도에 달하는 극단적 고온이 지속됐다.
멕시코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불안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폭염은 그야말로 ‘지옥의 열기’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섭씨 34도를 넘어선 기록적인 더위가 관측됐고, 북부 타마울리파스 주에서는 47도에 달하는 극단적 고온이 지속됐다. 연구진은 이런 폭염이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의 직접적 결과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미국 남부를 뒤덮은 열파는 과거보다 35배나 더 높은 확률로 발생하게 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의 무게가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문제는 이 온도의 상승이 단순히 여름철 불편을 넘어, 생명과 산업,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데 있다. 냉방을 위한 전력 수요 급증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고, 수십 명이 폭염으로 사망했으며, 농업 생산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멕시코는 이제 더 이상 ‘기후위기’를 이론으로 말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열기는 땅속의 물까지 말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도시 중 하나인 멕시코시티는 최근 수개월째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저수지의 수위는 평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수돗물이 일주일에 한두 번만 공급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빗물을 받아 쓰거나, 트럭으로 배달되는 물에 의존해야 했다. 수도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이 가뭄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더운 기온과 강우 패턴의 변화가 맞물리며 도시 전체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멕시코의 온도 상승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르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멕시코의 평균기온 상승률은 ‘세기당 3도’를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향후 10년 내에 멕시코의 절반 이상 지역이 ‘영구적 가뭄대’로 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도시 외곽에서는 식수 확보를 둘러싼 시위와 충돌이 빈번하다. 생존을 위한 ‘물 전쟁’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온과 가뭄이 반복되자 많은 이들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주민과 기후난민의 행렬이 미국 국경을 향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국경지대는 이제 단순한 정치적 경계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통로이자 절망의 경계가 되었다. 뉴멕시코 인근 국경에서는 2024년 한 해 동안만 100명 이상의 이민자가 사망했다.
불과 2년 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대부분 사막을 건너다 탈수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이러한 ‘기후이민’의 급증을 안보 문제로 간주하며 국경 통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 역시 미국의 압박을 받으며 자국 북부에 군 병력을 증강 배치했다.
공식적으로는 ‘이민자 보호’와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미국의 국경정책에 부응하는 조치에 가깝다. 한편 미국의 일부 정치권은 멕시코를 향해 ‘이민 통제에 실패하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위협까지 내세운 바 있다. 기후로 인한 생존 이동이 정치적 협박의 수단으로 변질된 셈이다.
▲ 미국국경과 맞다은 맥시코 지역 국경을 넘기위해 이민자들이 국경에서 쉬고 있다.
이민문제와 함께 국경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전장은 안보와 환경이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국은 마약, 총기, 인신매매, 불법무역 등 다양한 범죄의 사슬에 얽혀 있다. 미국은 멕시코를 향해 ‘국경 통제 강화를 위한 협력’을 요구하고, 멕시코는 이에 대한 대가로 경제적 양보나 관세 면제를 얻어내려 한다.
실제로 미국이 멕시코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시사하자, 멕시코는 즉각 국경지대에 1만 명 규모의 병력을 파견하며 대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경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경 장벽의 건설은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양국의 수자원 관리에도 심각한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멕시코 쪽에서 흘러든 오폐수가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도달해 해양 오염과 질병을 유발하는 사례가 발생했고, 이는 다시 ‘환경 분쟁’으로 비화했다. 결국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이민과 안보가 얽히며 ‘국경 문제’는 더 이상 단일한 외교 사안이 아닌 복합적 생존 이슈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멕시코의 경제 역시 큰 압박을 받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기후위기가 경제·금융 시스템의 물리적 리스크를 급격히 높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폭염과 가뭄, 태풍 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GDP 손실로 이어지고, 사회 불안정이 투자 심리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단지의 전력망이 폭염에 흔들리고,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며, 제조업의 원자재 공급망이 교란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위기가 또 다른 산업의 기회를 열기도 한다.
재생에너지와 기후적응 인프라, 수자원 관리 기술 등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며 새로운 경제 축이 형성되고 있다.
멕시코는 2012년 기후변화 법률을 제정했지만, 최근 들어 일부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석유와 천연가스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사업의 확대가 더디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멕시코의 기후위기는 정치의 실패와 구조적 지체가 낳은 결과”라며 “단기적 대응이 아니라, 인프라 개혁과 장기적 기후적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멕시코의 위기는 ‘기후’와 ‘국경’이라는 두 개의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적 위기다. 폭염과 가뭄이 불러온 생존의 위기는 국경을 넘는 이주 압력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환경 파괴는 안보 문제로, 안보 갈등은 경제 불안으로, 경제 위기는 다시 정치적 불신으로 연결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통합적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즉, 기후정책과 외교정책, 경제정책을 별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힌 문제로 보고 종합적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맥시코는 가뭄과 다른지역은 홍수가 일어나고 해수면 상승지역등 점 점 더 폭염속으로 들어가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멕시코의 사례는 ‘기후위기’가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안보, 경제, 사회, 외교의 모든 차원을 뒤흔드는 총체적 도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과 멕시코가 협력과 갈등의 경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지역의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가 직면한 기후위기 시대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하늘 아래, 뜨거운 태양과 말라버린 강, 그리고 철조망 너머의 이민자 행렬은 묻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오래 이 불타는 행성 위에서 서로의 경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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