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2021년 출범한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이 4년째를 맞았으나, 2027년까지 완성하겠다는 ‘레벨4+ 상용화 기반’은 여전히 가시권에 들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경찰청 등 4개 부처가 총 1조974억원을 투입, 범부처 R&D 프로젝트임에도 국민이 체감할 만한 자율주행 서비스는 좀처럼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상용화로의 전환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주행 기술은 국제 기준상 0단계부터 5단계까지 구분된다. 현재 국내에서 운행되는 차량은 대부분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레벨3’ 단계로, 돌발 상황에서는 사람이 직접 조향이나 제동을 수행해야 한다. 반면 정부가 추진 중인 ‘레벨4’는 특정 지역이나 조건 내에서는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차량이 모든 주행을 스스로 수행한다. 사실상 ‘완전 자율주행’(레벨5)으로 가기 전 마지막 관문이지만, 아직 실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사업 초반 예산은 하드웨어 분야에 집중됐다. 2022년 사업공고 기준 산업부가 주관한 ‘차량융합 신기술’에는 40억원(1과제), 과기정통부의 ‘ICT융합 신기술’에는 99억원(2과제)이 배정됐다. 주요 과제는 차량 플랫폼·센서·부품 등 제조 기술 개발이 중심이었으며, 인공지능(AI)·데이터 관련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후 과기정통부가 해당 영역의 신규 과제 확대를 추진, 대부분 과제가 4년 단위로 설계돼 구조적 조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2023~2024년에도 신규 과제 공모 규모는 크지 않았다. 2023년 제1차 공고에서는 총 51억7500만원 규모로 4개 과제가 공모됐고, 2024년 제1차 공고는 16억5000만원 이내로 제시됐다. 정부는 실증 기반 강화를 위해 국토부를 중심으로 별도 예산 총 20억원을 투입해 시범운행지구 6곳을 운영, 연구개발 성과가 지역 실증으로 확산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업단은 지난 4월 제주에서 1단계 성과공유회를 열고 “기술적 기반은 확보됐다”고 밝혔다. 4개 부처와 600여 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3년간의 연구 성과로 차량 플랫폼·센서·AI·데이터·통신 등 핵심 기술을 공개했다. 산업부 주관 ‘티카(T-car)’ 플랫폼은 초당 1조 회 연산(1000TOPS)급 차량용 컴퓨팅 성능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성과가 전시 수준으로 기술은 축적됐으나 실제 상용화 모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사업단 내부에서도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광복 단장은 같은 행사에서 “지난해 R&D 예산 삭감으로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내년도 예산 여건도 녹록지 않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실제로 2024년 이후 일부 신규 과제가 감액되거나 통합되면서 연구기관의 연속성이 흔들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술개발 중심으로 추진된 구조는 현장의 제도·안전 인프라 구축에도 공백을 남겼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TS)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통신연결 차량) 등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해킹 안전검사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SDV는 조향·가속·제동 등 주요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차세대 자동차 구조다. 자율주행차 역시 SDV 기반으로 운행되는 만큼 보안은 곧 안전의 핵심으로 꼽힌다. 차량 내부망이 해킹될 경우 주행 제어나 전력 관리 시스템이 마비돼 제어 불능이나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해킹 대응과 기능 검증 등 보안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다.
국내 자율주행차 보안 관리 체계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정부가 제작사에 소프트웨어 정보를 요구할 법적 권한이 없어 사실상 ‘제조사 자율 관리’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지난 4월부터 SDV 보안 인증을 의무화한 ‘SDV 보안 인증 제도’를 통해 제도적 기준을 강화했다. 이에 김 의원은 “보안 검증 없이 레벨4를 논의하는 건 탁상공론”이라며 “산업 육성보다 안전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보안뿐 아니라 실증 규모에서도 격차가 크다. 국내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 누적 대수는 471대(2025년 기준)에 불과하다. 미국 웨이모(Waymo)는 22조원을 투입해 수만 대의 실증차를 운행 중이고, 중국 정부는 민관 합산 239조원 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지(A2Z) 상무는 “기술 수준은 뒤처지지 않지만, 실증 의지와 규제 유연성이 부족하다”며 “이제는 예산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자율주행 정책의 무게중심을 ‘데이터·서비스’로 옮기고 있다. AI·데이터 활용 확대와 실증 중심 규제 완화가 핵심으로 원본 영상데이터 활용 허용과 도시 단위 실증 확대 등이 추진 중이다. 기존 기술개발 중심 R&D에서 벗어나 민간 참여와 상용화를 앞당기려는 방향으로 정책이 조정되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AI 학습용 데이터센터 구축, 자율주행 실증도시 조성, 원본 영상데이터 활용 허용 등 제도 개편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연내 스쿨존 등 안전 규제를 정비하고, ‘자율주행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방정부 차원의 실증 시도도 확대되고 있다. 경기 안양시는 지난해 도입한 18인승 자율주행버스 ‘주야로(레벨3)’를 교통 사각지대에 투입해 누적 탑승객 약 2만2600명을 기록했다. 시민 만족도는 92%에 달했지만, 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레벨3 단계로 완전 자율주행과는 거리가 있다. 시는 올해 말 운전 개입이 최소화된 ‘레벨4급’ 차량을 시범 운행할 예정이나, 안전요원이 동승하는 구조여서 ‘레벨4 진입 테스트’ 단계로 평가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자체 단위로도 확산되고 있다. 화성시 리빙랩은 정부와 사업단이 추진 중인 ‘레벨4+ 실증 거점’으로, 교통약자 이동지원·공유차 등 8대 시민체감형 서비스를 2026년까지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는 제한 구간 내 시험주행 단계로 실증 성과가 본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명목상 레벨4지만 기술과 제도 모두 과도기 단계에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남은 2년이 사업단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HW와 SW의 균형보다 기술을 실제 서비스로 연결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며 “성과관리 기준도 기술 완성도에서 벗어나 실증률과 상용화 기여도로 전환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국내 자율주행 산업은 ‘레벨3에서 레벨4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며 “정부가 제도적 실행력을 갖춰야 ‘레벨4 상용화 기반’이 구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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