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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칼럼니스트] 체육계 선거제도 개혁은 지난 수십 년간 ‘정치화와 체계화’라는 두 축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해왔다.
‘국민체육진흥법’은 대한체육회와 지방체육회의 회장을 투표로 선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체육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취지였지만, 현실은 제도의 취지가 왜곡된 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운영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최근 사회적 논란거리로 고개를 들었던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선거인단 추첨 방식과 절차적 공정성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재까지도 그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선거인단 구성 과정에서 특정 종목의 과도한 영향력이 행사됐다는 주장과 선거인 명부 관리의 불투명성이 법정 분쟁으로 비화 되기도 했다.
일부 종목 하나가 전체 투표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는 ‘직선제=민주화’라는 단순 논리를 무력화시킨다. 직선제 도입은 대중적 요구와 제도 개선의 명분으로 강조됐지만, 비인기 종목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불평등을 초래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체육계 개혁 논의는 직선제와 가중치, 모바일 투표 도입 등 기술적 해법의 틀 안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뿐, 제도의 정치화를 극복하는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계 선거제도가 단순히 법·제도적 미비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제도 운영의 ‘주체’가 제도를 자신의 권력 재생산 장치로 활용하는 구조적 병폐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방증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제도적 체계화 시도가 교착하면서, 체육계 선거제도 개혁은 늘 출발점 그 언저리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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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관행: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체육계 선거제도 개선 담론은 언제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제도 운영은 이러한 추구 가치와 달리, 오랫동안 축적된 기득권적 관행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선거공보 발송 방식, 후보자의 자격 요건, 선거비용 상한제 등은 공직선거제도를 모방한 듯 보이지만, 체육계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형식적 규정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선거비용 제한제도는 자금력에 따른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로 도입 논의가 제시됐다. 하지만 실제로 비공식적 자금 사용 은폐 통로를 차단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명확한 답을 구할 수 없다. 후보자의 세금 납부 실적, 신용도, 전과 기록 공개는 청렴성 담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선거인의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러한 규정은 제도적 정당성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소비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제도의 목적성이다. 직선제를 도입하여 수십만 명의 체육인이 투표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종목의 몰표 구조와 디지털 소외계층의 배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도 귀결된다. 제도의 포장만 바뀐 채, 기득권이 유지되는 구조적 불평등이 재생산된다면 체육계 민주화는 허상에 불과하다.
빛바랜 관행은 단순히 낡은 규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체육계가 자율이라는 높은 가치 아래 방치해온 기득권 질서의 산물이다. 제도 개선의 핵심은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규정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투명한 실행력과 책임성을 뿌리 내리도록 하는 데 있다. 규정의 추가가 아니라 실행의 일관성이 체육계 개혁의 진정한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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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고민은 과거, 변화는 지금!
민선 2.0 시대에 체육계가 내세운 선거제도 개혁은 표류하는 배와 같다. 개혁의 방향은 명확해 보이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기득권적 관행이라는 암초에 가로막혀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다. 체육계 민주화의 진정한 출발점은 화려한 제도 설계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는 것이 우선이다.
체육계가 스스로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든 체육인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때, 비로소 제도 개혁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체육계 선거제도 개혁은 앞으로도 허울 좋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을 뿐이다.
체육계 선거제도 개혁은 새로운 규정의 추가가 아니라, 공정성과 책임성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자, 이제 달라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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